[newsBI 칼럼|시대정신 기본소득] (8) 더 공정한 장학금을 위해 더 많은 공인인증서를? (성이름)

국가장학금 제도는 2011년 마련되어, 2012년 시행되기 시작했다. 높은 대학등록금이 공론화 된 결과였다. 박근혜 대통령은 대선 당시 반값 등록금을 공약했고, 2014년의 첫 예산 편성안은 해당 공약을 어느 정도 반영해보였다. 우선 예산이 2013년보다  6825억원 늘어난 3조 4575억 원으로 편성되었다. 여기에 대학의 자체 분담금을 더하면, 명목상으로나마 한국의 전체 대학 등록금 절반에 가까워진다. 또 높은 탈락율로 인해 실질적인 효과가 낮다는 비판에 반응하여 성적 기준을 완화하는 방안도 나타났다. 아쉬운 점이나 문제가 없지 않지만 분명 더 나아진 점이 있다.  2015년부터는 또다른 ‘개선’안이 시행된다. 다음과 같은 새로운 소득 산정방식을 도입하는 것이다.

’15학년 1학기 교육부(한국장학재단) 소득연계 학자금지원을 받고자하는 대학생 및 입학(복학, 편입학 등) 예정인 대학생의 가구원(부모 또는 배우자)는 공인인증서를 준비해 한국장학재단 홈페이지를 통해 온라인 동의할 것’

유독 눈에 밟히는 것 하나가 있다. 공인인증서다. 이 글을 읽는 이라면 아마 온라인 쇼핑이나 공공기관 서비스를 이용하며 공인인증서 사용의 복잡함을 경험한 적이 있을 것이다.  나도 최근 새삼스럽게 그 불편을 겪은 바 있다. 학교의 자체 장학금을 신청할 때 였다. 장학금을 위한 각종 증빙서류 중에 가족관계증명서가 있었다. 몇 일간의 빽빽한 일정 탓에 온라인으로 이를 발급 받아보려고 했던 것이 문제였다. 구글 크롬으로 발급사이트에 접속하자마자 문제가 발생했다. 나는 브라우저를 인터넷 익스플로러로 갈아타고, 여섯 개 가량의 보안프로그램을 설치하고, 브라우저를 재시작했다. 64비트 대신 32비트 버전을 켠 것까지 세 번을 재시작해야 했다. 그 뒤에도 프로그램이 작동하지 않아 전화로 문의했다. 프로그램을 지우고 다시 깔아보라며 영어로 된 프로그램의 철자를 한 자 한 자씩 불러주는 친절한 상담원과의 통화를 최대한 빠르게 끝내고, 나름대로의 사투를 벌인 후에야 발급 화면을 눈 앞에 띄울 수 있었다. 그리고 그제서야, 발급을 위해서는 ‘해당 기관에서 인증한 프린터’만 사용할 수 있다는 공지를 보고 말았다. 처음부터 안 될 일이었던 것이다. 결국 포기하고 이튿날 주민센터를 찾아갔다.

때문에 공인인증서라는 단어를 보자마자 스트레스가 밀려왔지만 이번엔 금방 해결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새로운 문제가 더 남아있었다. 미혼인 나의 경우, 가구원 중 부모님 두 분이 직접 공인인증서를 통해 사전동의를 진행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넘어야 할 산이 하나 둘이 아니었다. 우선 나의 부모는 공인인증서가 없다. 이러저러한 과정을 거쳐 발급받는다고 해도 어머니는 컴퓨터를 켜는 방법도 모른다.  그나마 아버지가 컴퓨터 바둑을 즐겨하시기에 마우스를 다룰 줄 아는 정도다. 내가 대신 하는 것도 곤란한 것이 나는 집에서 기차로 왕복 9시간 걸리는 곳에 살고 있다. 다행히 형제가 있어 이 부분에 도움을 받을 수 있었지만, 아버지가 공인인증서를 발급받을 시간이 없다. 아버지는 집에서도 떨어진 도시에서 합숙하며 일하고 계셨다. 졸지에 나는 복지사각지대에 놓인 셈이었다. 그리고 내가 처한 이 상황이 아주 특수한 경우는 아닐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비슷하거나 더 심한 곤경에 처한 이가 한 두 명이 아닐 것이다.

그런데 이런 불합리한 정책에도 합리적인 이유가 있다. 한정된 예산을 학생과 학부모의 소득 수준에 맞춰 지급함으로써, 꼭 필요한 사람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이 되도록 한다는 논리다. 이를 위한 보다 ‘투명’하고 ‘공정’한 시스템을 도모한 결과가 이번 개선인 것이다. 그동안은 국민건강보험공단의 건강보험료 산정자료를 통해 장학금을 지급해왔다면, 이번 개정을 통해서 보험이나 대출 현황 등 금융재산까지 활용해 소득 수준을 산정할 수 있게 된다. 이 설득 과정에는 특히 ‘일부 고소득자’의 수급을 방지하겠다는 예시가 자주 동원된다.

정말 이러한 개선이 가능하다면, 문제는 단지 공인인증서에 국한되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공인인증서  체계는  선별 복지가 근본적으로 가지는 문제를 더 짜증스러운 모습으로 강조해 보일 뿐이다. 까다로운 선별 절차나 요구 사항들은 사각지대를 끊임없이 ‘개발’한다. 아쉬운 쪽은 항상 ‘선별’되고 싶은, 복지가 필요한 개인들이기 때문에 투명성과 공정성을 빌미로 한 행정 비용 부담이 수급자 본인의 몫으로 주어지는 상황을 거부하기 어렵다. 더 큰 문제는 수급대상자들이 치러야 하는 이 비용은 가시화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러한 비용들을 모두 고려했을 때 선별 시스템의 강화는 효율적인 면에서도, 공공성을 담보하는 면에서도 실패한다.

오히려 이러한 선별조건이 사라질 때, 시스템은 절차적, 사회적 비용을 줄임으로써 효율성을 성취하고, 사각지대를 없앰으로써 누구도 배제되지 않는 공공성을 성취하고, 무엇보다도 사회의 부를 필요한 영역으로 필요한 만큼 이전시킴으로써 비로소 공정성을 성취할 수 있게 되지 않을까? 마지못한다는 듯 복지정책들이 도입되기 시작한 이 시점에 ‘선별이 더 효율적이고 공정하다’는 데 대한 반문이 더 많이 일어나야 한다. 우리는 더 광범위한 변화가 필요한 순간에 와있지 않은가.

글. 성이름 (기본소득청’소’년네트워크 운영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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