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ewsBI 칼럼|시대정신 기본소득] (12) 농민에게 기본소득을! (최혁봉)

* 기본소득청’소’년네트워크에서 [시대정신 기본소득] 칼럼을 연재합니다. 기본소득의 핵심 원칙은 ‘모두에게’ ‘조건없이’ 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누구나 당사자로서 기본소득에 대해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번 칼럼 시리즈에서는 각자가 가진 고민들을 통해 동시대의 문제를 짚어보고, 이로써 기본소득 논의를 재구성해보려고 합니다. – BIYN 사무국 (sec@biyn.kr)

나는 농부다. 2005년 2월 인천에서 전라남도 보성군 벌교읍 존재산 자락 산골마을로 터를 옮겼다. 아들 넷, 어머니와 아내 그리고 처형을 포함하여 8식구다. 이곳에서 그동안 열 번의 농사를 지었다. 처음에 시골로 들어 올 때는 의식주를 비롯한 교육과 사상에 이르기 까지 모든 것을 자급자족하는 생활을 계획하였다. 그저 자연이 베푸는 만큼 누리고, 자연이 아이들과 가족 모두를 품어 줄 것으로 생각하였다.

이사 온 첫 날, 동네 아주머니 한 분께서 말씀하셨다.

“나는 아직 당신을 동네 사람으로 인정 못하요. 최소한 3년은 살고 나야 인정해 줄라요. 섭섭해 하지는 마시오”

처음에는 아주머니가 왜 이런 말씀을 하시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이제 막 동네로 이사 오는 사람에게 너무 야박한 소리를 하는 것 같아 섭섭하기도 하였다. 나보다 앞서 여러 명의 젊은 귀농인들이 3년을 버티지 못하고 도시로 되돌아갔다는 이야기를 나중에야 전해 듣게 되었다. 한 해 두 해 살아가면서 아주머니의 말씀은 우리 가족의 미래를 예시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종종 하곤 했다.

농사를 시작했으나, 땅과 작물을 잘 모르니 농사가 제대로 될 리가 없었다. 첫 해 콩 농사는 비둘기들의 공격으로 세 번 씩이나 다시 심는 고생을 하였다. 고구마는 아직 산에 먹을 것이 없는 5월 말 경 멧돼지 가족의 식량으로 파헤쳐 졌다. 방치 농법에 가까운 피투성이 논은 동네 어르신들의 구경거리가 되기에 충분했고, 기계를 쓰지 않고 삽과 괭이 호미만으로 농사짓는 것은 매우 고된 일이었다.

농사짓는 것도 어려웠지만, 농산물을 수고한 만큼 제 값 받고 파는 것은 더욱 어려운 일이었다. 결국 정착 초기 3년 간은 농사를 지으면서 틈틈이 순천으로 막노동 일을 다녔다. 자급자족, 자연의 순리대로 살고자 하는 철학만으로 살아내기에는 농사로 밥 먹고 사는 일은 매우 혹독하게 느껴졌다. 도시의 각박한 삶을 탈피하여 자연의 순리대로 살고자 시골 산골 마을에 들어왔으나, 오히려 우리 사회의 가장 치열한 삶의 현장에 들어와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하게 되었다.

 

예상보다 많은 부채

5년 간 각고의 노력 끝에, 땅과 작물을 이해하게 되었다. 그간의 경험을 토대로 환경에 맞는 작부 체계를 정립하고 소비자를 꾸준히 늘려갔다. 덕분에 아이들과 소박하게 안정적인 생활을 하기에는 부족함이 없다고 느꼈다. 중고지만 경운기와 트랙터도 장만하여 육체노동의 부담을 덜 수도 있었다. 그러나 농지의 대부분이 임대한 땅이다 보니, 갑자기 땅을 내 놓으라는 통에 농부로서의 근간이 흔들리는 일이 발생하였다. 결국 대출을 받아서 약간의 농지를 구입하였다. 또한 시골에 와서 아들 둘을 더 낳아 넷이 되니 10평 남짓의 조립식 집이 너무 좁게 느껴졌다. 또다시 대출을 받아서 집을 지었다. 총 대출금이 1억 3000여 만 원에 이르게 되었다. 올해부터 본격적으로 대출금 상환을 해야 한다. 대출할 당시에는 대략 1년에 천 만원 정도는 갚을 수 있을 것으로 판단하였다. 그러나 최근 2년 동안 연거푸 농사를 망치다 보니 빚 상환은 우리 가정을 압박하는 요인이 되고 있다.

부채 문제 이외에 경제적 부담으로 다가오는 것은 아이들의 교육문제이다. 홈스쿨링을 하고 싶었으나, 철학적 확신의 부재와 현실적인 문제로 학교에 다니게 되었다. 학원 같은 곳은 다니지 않았으니 크게 돈 들어갈 일은 없었으나, 중학생이 되니 생각지 않았던 교육비가 발생한다. 지금 큰 아이는 미국 포틀랜드 주립대학에서 주관하는 어학연수에 한달간의 일정으로 참여하고 있다. 내가 직접 보낸 것은 아니고, 전라남도의 인재육성 정책의 일환으로 시군별로 몇 명 씩 선발하여 보내주는 것이다. 아마 군별로 진행 된 영어캠프에서 좋은 성적을 얻어서 선발된 것 같다. 얼마 전 어학연수 선발통지서가 집으로 날아 왔는데, 묘한 감정이었다. 뭐랄까? 아들이 나름 공부를 열심히 하고 있고 좋은 성과를 거두고 있다는 점에서는 고무할 만 한 일임이 분명하였다. 그러나 도 단위에서 아이들을 선발해서 특혜를 주는 과정이 있고 거기에 나의 아이가 포함되어 있다는 것이 좀 찜찜했다. 게다가 총비용이 700만원 정도 인데, 비행기 값 200만원은 자부담인 것도 큰 부담으로 다가왔다. 그러나 아내의 강력한 주장과 아이가 가고 싶다는 의견을 표출하였기 때문에 다른 도리가 없게 되었다.

고작 200여만원의 경비를 놓고 아이를 보낼까 말까 고심하고 있는 나 자신의 형편을 보면서 땅을 지키는 농부로서 매우 못마땅한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물론 형편이 더 어려운 분들과 사회 각처에서 투쟁하는 분들 생각하면 속편한 소리일 수도 있겠다. 그러나 나름 지난 10여년을 땅과 함께 고집스럽게 건강한 농사를 위해서 열심히 땀흘렸건만, 아직도 경제적 기반을 확고히 하지 못했다는 것이 안타까워서 하는 말이다. 좀 더 지혜롭게 농사를 지었다면 기본적인 생활을 해 나가는데는 어려움이 느끼지 않을 수 있었을 텐데 하는 마음이 밀려왔다.

그런데 정말 이러한 경제적인 궁핍의 원인이 나 자신이 지혜롭지 못해서 발생한 것일까? 나 개인의 문제일까? 내 머릿속에서는 새로운 의문이 강하게 맴돈다. 국가가 여전히 농촌과 농민을 내부 식민지로 삼고 수탈의 대상으로 삼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나는 진정 땀 흘리고 애쓰는 만큼의 정당한 경제적 보상을 받고 있는가? 농업정책에 할당된 국가 예산이 공정하게 나에게 배분되고 있는가? 나는 내 몫을 제대로 챙기고 있는가?

 

정부지원금은 어디로

지금 우리나라의 식량 자급률은 25%라 한다. 쌀을 빼면 5% 정도 밖에는 안 된다고 한다. 이렇게 극단적인 상황이라면 국가와 정치는 당연히 국민의 생명과 안전의 기초가 되는 식량자급을 최우선 목표로 차분히 준비해야 마땅하다. 이는 지극히 상식적인 일이라 토론의 여지도 없는 것이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국가는 유럽, 미국을 거쳐 일방적으로 중국과도 FTA 협상을 체결하였다. 이 정도면 국가가 농업과 농민을 하찮게 여기고 있다는 의심은 지나친 것이 아니며, 오히려 확신에 도달한다. 국가는 농업과 농민을 물가 조정의 수단 정도로 하찮게 여기고 있음이 틀림없다. 농업은 값싼 산업노동자를 뒷받침하기 위한 수단이요, 산업화를 위해 착취를 달성할 수 있는 내부 식민지인 것이다. 농업인은 수탈당하고 있다. 땀 흘린 만큼 정당하게 보상 받는 안정적인 생활이 불가능하다. 농민 생활이 궁핍하게 된 가장 큰 이유는 정부의 정책 때문이다.

현재의 쌀값은 94년 우루과이 라운드 체결 당시의 쌀값에 머물러 있다. 20년 간 쌀값이 제자리를 지키고 있는 것이다. 기계화를 통한 대규모 농가 이외에 쌀농사는 더 이상 자식을 키우는 데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이미 농업은 밟힐 대로 밟혀서 나아질 것이라는 기대마저 사라지고 있다. 잘못된 정책에 대해 저항할 의지마저 상실되고 있다. 쌀 수입에 대해 가장 반대해야 할 농민이 잠잠한 이유이다.

나의 주변에서 지난 10년 간 농업 예산 흐름을 살펴보면, 소위 “조직화, 규모화를 통한 경쟁력 확보”라고 하는 기본 방향에 따라 돈이 움직이고 있다. 그러니까 법인과 같은 조직을 갖추거나, 농사를 많이 지어야만 농업과 관련해서 정부의 지원을 받기 수월하게 되어 있다는 뜻이다. 정부의 의도대로 각종 법인이나 조직이 늘어나고 있다. 그러나 그러한 조직의 대개는 발 빠르게 정부의 정책에 대응하여 돈을 타내기 위한 조직이지, 진정으로 농민 내부에서 협력의 필요성이 충분히 공감되고 논의되어 발생한 것은 매우 소수에 불과하다. 농업 정책의 기본 방향이 농민의 생명력을 오히려 침해하고 있는 실정이다. 약아 빠진 농민이 더 살아남기 쉽도록 구조화하고 있다. 농업 예산은 공정하게 배분되지 않고 있다. 대농과 기업농에게 지원금이 쏠리고 있다. 나는 내 몫은 되돌려 받고 싶다. 정부의 잘못된 정책 방향으로 인해서 현금을 빼앗기고 있다고 생각한다.

 

농부로서의 자존감을 위하여

처음 시골에 왔을 때, 정부 지원금을 신청해 보았다. 소농, 가족농에게 꼭 필요한 사업은 찾아보기가 어렵다. 그나마 필요한 사업을 만나더라도 결국 농민이 독자적으로 사업을 완수할 수 없고, 반드시 대행업체가 완료해 주어야만 사업을 끝낼 수 있다. 예를 들어 하우스를 짓는다고 할 때에 농민으로서는 당연히 자신이 직접 시공하기를 바란다. 다년간의 경험을 통하여 전문가 수준의 능력을 갖추고 있을 뿐만 아니라, 인건비를 절감해야 하기 때문이다. 농민이 자신의 농사 시설을 직접 짓는 것은 얼마나 자연스러운 일인가! 그러나 어찌된 일인지 사업 지침에는, 국가에서 바람이나 눈의 압력을 버틸 수 있는 안전 설계의 모범을 제시하는 것은 어느 정도 인정하지만, 농민 당사자와 가족의 인건비는 사업비에서 제외하도록 되어있다. 이러한 사정으로 인해서 농민이 직접 일을 하고도 다른 사람이 일한 것처럼, 혹은 대행업체가 사업 전체를 완료한 것으로 서류를 꾸미는 일이 발생한다. 일종의 범법자가 되는 것이다.

정책입안자들에 의해서 농민에게 필요한 사업으로 예상되는 정책이 결정되고 농민스스로 시공할 수 없도록 강요함으로써 소농과 가족농은 점점 정부 정책에서 소외되고 있다. 농민 스스로 자신에게 필요한 것을 찾고 현실의 문제를 해결해 나갈 수 있는 자발성이나 창조성은 억압되고 있다. 나는 현금으로 정책지원금을 배당 받아서 나에게 꼭 필요한 일을 스스로 계획하고 스스로 만들어 나가고 싶다. 그러는 것이 농부로서의 자존감을 세워 나가는데 꼭 필요한 일이다. 이것은 농부로서 내가 삶을 가장 아름답게 꾸려 나갈 수 있는 방법이다. 위에 열거한 상황은 대개의 농부들도 공감할 것으로 생각한다.

 

농민에게 기본소득을

안정적인 수입을 달성하기 어려운 농업의 구조적인 문제, 소농과 가족농을 배려하지 않은 국가 정책의 기본방향으로 인해서 부수입이 필요한 농민이 양산되고 있다. 작년 여름 삼복더위 농한기를 맞이하여 나 또한 막노동을 다녔다. 대출금 상환이 시작되었고 농사 작황이 좋지 못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건설 일용직 노동의 현장에 나와 같은 농민들이 대거 투입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7년 만에 일을 나가 보니, 농부의 비율이 더욱 늘어나 있었다. 어느 날 하루는 함께 건설현장에서 투입된 일용직 일꾼 4명 가운데 3명이 농부인 적도 있다. 농부는 각각 40대, 50대, 60대였다. 왜 많은 농부들이 일할 수 있는 한, 농한기에 나가서 과외 돈을 벌려고 하는 것일까?

삶의 구체적인 이유는 다 다르지만 분명한 것은 농부의 삶이 팍팍하다는 것이다. 적당량의 농사를 지으면서 보통 시민으로서 사회에서 요구하는 생계 문제나 자녀교육등을 충분히 뒷받침 할 수 없기 때문에 건설현장으로 나오는 것이다. 일일 잡부로 생계를 이어가던 사람들 입장에서는 농한기 농부의 출현은 심각한 위기이다. 농부는 잡일에 매우 능하기 때문이다. 농부가 아닌 다른 한 분은 사무소에는 계속 나왔지만 현장에는 일주일 만에 나오는 것이라고 했다. 농민의 몰락은 건설 자본에게는 값싼 노동력을 유지하고 공급받을 수 있는 좋은 기회로 작동하고 있는 것이다. 위에 열거한 사항 이외에도 농민의 삶이 어려울 수 밖에 없는 수많은 현실이 있다.

우리사회가 작동되는 데에 두 말할 나위 없이 기본적인, 식량생산이라는 역할을 수행하는 농민이 조금 더 안정적인 생활을 영위할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 소농과 가족농이 존엄성을 지키면서 삶을 영위할 수 있는 길은 없을까? 농민 스스로 자신의 필요를 찾고 해결할 수 있도록 돕는 방법이 없을까? 농민의 자발성과 창조성이 발현되도록 돕는 방법이 없을까?

나는 농민의 생존권, 자율권, 존엄성을 동시에 만족시켜 줄 수 있는 최고의 카드가 기본소득이라고 생각한다. 현재로서 나는 다른 대안이 떠오르지 않는다. 농민에게 기본소득은 절실하다. 각자 농부의 몫은 고르게 배당되어야 한다. 그 날이 어서 오기를 꿈꾼다.
글_ 최혁봉 (농부/전남녹색당 공동운영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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