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ewsBI 칼럼|시대정신 기본소득] (13) ’예술가’라서 기본소득이 필요한 것이 아니다 (스밀라)

* 기본소득청’소’년네트워크에서 [시대정신 기본소득] 칼럼을 연재합니다. 기본소득의 핵심 원칙은 ‘모두에게’ ‘조건없이’ 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누구나 당사자로서 기본소득에 대해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번 칼럼 시리즈에서는 각자가 가진 고민들을 통해 동시대의 문제를 짚어보고, 이로써 기본소득 논의를 재구성해보려고 합니다. – BIYN 사무국 (sec@biyn.kr)

나는 대학에서 미술을 전공했고, 졸업 후 작업을 하고 있다. 그리고 동시에 마구잡이로 일한다. 엄마는 남들에게 날 소개할 때 기분이 좋으면 ‘프리랜서’라고 소개하고, 기분이 나쁘면 ‘백수’라고 소개하곤 한다. 엄마가 보기에 마땅한 일을 하고 있지 않기 때문일 게다. 일단 하고 있는 일 중에 ‘돈이 되는 일’부터 말해보자면 보통 나는 그림을 가르치는 일로 생계를 유지한다. 좋은 교육자인지와는 별개로 내가 제일 잘할 수 있는 일이기에 이 일을 한다. 하지만 수입이 일정하지는 않다. 보통 수업들은 1개월에서 3개월 단위로 이어지기 때문에 수업이 없는 기간에는 수입이 없는 계약직 신분이다. 그 외에도 녹취 알바, 벽화나 인테리어 소품 만들기, 피어싱 숍 아르바이트 등등 내가 할 수 있는 선에선 모든 일을 해왔다. 그러나 수입은 늘 충분치 않기 때문에 저축을 하는 것은 상상 할수도 없고, 작업실 월세, 생활비, 학자금 대출을 갚고 나면 남는 것이 거의 없는 생활을 대학 졸업 후 계속 이어나가고 있다.

‘돈이 안 되는 일’을 말하자면 나는 기본소득청’소’년네트워크의 운영위원이고, 카톨릭을 믿는 사람으로서 평신도 사도직 운동을 한다. 그리고 ‘돈이 되는 일’보다는 ‘돈이 안 되는 일’에 훨씬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하며 산다. 작업도 마찬가지다. 내 작업으로 벌어 들인 수익은 졸업 후 거의 0에 가깝다.

맨 처음 미대에 입학하면 교수님들은 ‘전업 작가’에 대한 꿈을 학생들에게 심어놓는다. 마치 졸업을 하고 열심히 작업 하면 누구나 전시를 하고 작업을 팔아 생계를 유지할 수 있는 것처럼 말씀하시지만, 그게 사실이 아니라는 건 학년이 올라가면 자연스럽게 알게 된다. 왜냐하면 주변에 그렇게 살고 있는 사람이 교수님 밖에 없기 때문이다.(물론 교수님의 모든 수입이 작품 판매에서 오는 것도 아니다.) 결국 졸업 후 작업을 계속 하는 사람은 소수에 불과하다. 왜냐하면 작업을 판매하는 것으로 생계를 유지하는 전업 작가로서의 삶은 이제 불가능하고, 당연하게 투잡, 쓰리잡의 생활을 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긴 노동시간과 낮은 임금으로 악명 높은 이 나라에서, 일을 하면서 작업까지 한다는 것은 무척 고된 일이다. 인간이 가진 에너지는 한정되어 있고, 임금 노동은 늘 너무 많은 에너지를 앗아간다.

얼마 전에 <접속유지>라는 행사가 열린 것을 보았다. 참석하지는 못했지만, 예술가 혹은 ‘돈이 안 되는 일’을 하는 사람들이 모여서 어떻게 작업과 돈 벌기를 병행하고 있는 지를 나누는 자리처럼 보였다. 나는 예술가라고 불리는 사람들은 대단한 생활인이라고 믿는다. 그들은 어쩔 수 없이 임금 노동 – 작업 – 생활의 싸이클을 쉴 새 없이 돌려야하는데, 그 셋 사이의 균형이 맞지 않는다면 삶 자체가 금세 어그러지고 만다. 너무 많은 시간 일하면 작업과 생활을 돌볼 시간이 없고, 작업만 하기 위해선 수입이 보장되어야 하며, 품위 있는 생활을 위해선 온전히 나 자신을 돌볼 충분한 시간이 필요하다. 그것은 곧게 서있기 위해선 온몸에 힘을 주어야 하는 것과 같은 원리이다. 어느 한 고리라도 긴장이 풀어지면 유지하기 힘들어지는 것이다.

가끔 작가가 작업 활동에 들이는 노력이, 품위 있게 살고 싶은 사람들이 생활에 들이는 노력과 비슷하다는 생각을 한다. 물론 그 둘이 완전히 동일 선상에 있을 순 없지만, 태도의 문제에서 같다고 느낀다. 이전에 나는 단지 예술가로서 기본소득을 지지했지만, 현재 나는 예술가이자, 품위 있게 살고 싶은 사람으로서 기본소득을 지지한다. 노동labour이 아닌 일work의 가치 또한 존중하는 기본소득 윈리는, 내가 하고 있는 ‘돈 안 되는 일’을 하는 사람들과 품위 있게 살고 싶은 ‘개인’들 모두 사회에서 환영 받아 마땅하다고 말하기 때문이다.

기본소득을 설명할 때 꼭 포함되는, ‘기본소득이 필요한 사람들’의 예시에 나오는 것이 예술가이다. 예술가라는 사람들은 필연적으로 돈을 많이 벌기 힘든 ‘가난한’ 사람들이고, 예술은 사회적으로 가치 있는 것이기 때문에 사회가 그들에게 꼭 기본소득을 지급해야 한다고 말한다. 맞는 말이다. 대부분의 예술가는 가난하다. 그리고 어떤 사람들은 예술이 사회적으로 정말 가치 있다고 믿는다.  예술가는 가난하고 보호가 필요한 존재라는, 사람들이 반 고흐를 좋아하는 이유가 되기도 하는 이런  ‘예술가 에토스’를 가진 불쌍한 예술가의 상은 사회적으로 만들어진다. 그러나 때로는 예술가 스스로가 이것을 재생산 하는데 가담하기도 한다.

‘예술가’는 한번쯤 스스로 자문해봐야 한다. 나는 ‘예술가’이기 때문에 가난하고, 그래서 경제적 지원이 필요한가? 처음엔 작업을 하는 사람으로서 기본소득이라는 아이디어에 매혹됐지만, 나는 기본소득을 지지하는 만큼 예술가 복지 정책을 지지하지는 않는다. 예술가들이 겪는 어떤 문제들은 그들이 예술가라서 생기는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한 예술가의 죽음이 예술가의 죽음으로만 회상된다면 우리는 더 이상 그 죽음을 애도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어떤 이의 빈곤이 더 이상 그 사람의 외양이나 생활의 모습으로 드러나지 않는, 빈곤이 가시화되지 않을 가까운 미래에는 자격에 따른 선별적 복지가 아니라 모두에게 조건 없이 주어지는 기본소득이, 너무나 다양해서 도저히 충족시킬 수 없을 것 같은 모두의 필요를 채울 수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

버트런드 러셀은 <자유로 가는 길>에서 ‘생계를 유지하기엔 충분하고 사치를 부리기에는 부족한’ 이른바 ‘뜨내기의 품삯’에 대해 이야기 하는데, 이것은 기본소득과 유사한 개념이다. 그는 ‘모든 시간을 예술과 즐거움에 바치고자 하는 예술가는 이 뜨내기의 품삯으로 연명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한다. 그러면 모두가 예술가처럼 살지 않을까 하는 우려에 그는 ‘비교적 쉽고 쾌적한 노동 대신 궁핍과 자유를 선택할 만큼 소박한 즐거움의 가치를 아는 사람이 많을 성 싶지는 않다’고 답한다. 또한 그는 ‘예술이 꽃피도록 하는 것은 체제가 아니라 오로지 자유 뿐’이라고 말한다. 나는 현대의 미술이 성숙한 자유주의와 그에 따른 자율성과 실천에 기반한다는 말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지금 예술가들에게 정말 필요한 것은 예술가만을 위한 복지가 아니다. 현재 예술가들이 겪고 있는 문제들을 예술가들만의 문제로 생각한다면 영원히 그것들을 해결할 수 없을지 모른다. 현재의 젊은 작가들에겐 알량한 선별적 복지가 아니라 보편적인 복지, 더 많은 ‘청년관’과 더 많은 기회, 더 많은 자유가 필요하다.

기본소득이 실현되어가는 논의 과정 안에서 예술가들이 현재 겪는 어려움들도 해소될 것이라고 기대한다. 기본소득이 실현된 사회란, 성숙한 자유주의가 있고 그에 따른 자율성과 실천이 있는 사회, ‘개인’들이 끊임 없이 접점을 만들어내는 사회이기 때문이다. 현재 진행되고 있는 ‘청년관을 위한 행동’ 또한 단순히 젊은 예술가들에게 공간을 주고, 지원을 해주는 차원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현재 부재하지만 앞으로 반드시 필요한 공론장을 만드는 과정, 젊은 예술가가 시민이자 동시에 ‘협업’하는 ‘개인’으로서 발언하는 경험이다.

그리고 나는 앞으로 ‘청년관’과 같은 기획이 더 많은 영역에서 일어나길 소망한다. 더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영역에서 필요한 이야기를 할 때, 비로소 기본소득의 실현도 가능해질 것이다.


글_ 스밀라 (지천년견오백 @Duruduru_PP & 기본소득청’소’년네트워크 운영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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