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ews BI 칼럼|시대정신 기본소득] (14) 경솔하게, 기본소득! (아키)

* 기본소득청’소’년네트워크에서 [시대정신 기본소득] 칼럼을 연재합니다. 기본소득의 핵심 원칙은 ‘모두에게’ ‘조건없이’ 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누구나 당사자로서 기본소득에 대해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번 칼럼 시리즈에서는 각자가 가진 고민들을 통해 동시대의 문제를 짚어보고, 이로써 기본소득 논의를 재구성해보려고 합니다. – BIYN 사무국 (sec@biyn.kr)

기본소득이라는 개념을 처음 접했던 것은 2005년쯤, 대학원 수업시간에서였다. 당시 나는 이 개념을 ‘이상주의자들의 치기어린 투정’이나 ‘소득불평등 논의가 지나치게 추상적으로 확장되었을 때 나올 수 있는 나쁜 예’ 정도로 생각했다. 당당하게 노동을 해서 돈을 버는 것이 좋지, 그냥 ‘무상임금(?)’을 뿌려대는 것은 오히려 수혜자들의 자발성을 해치게 될 것이라는 생각도 했다.

그런데 10년이 지난 지금, 난 기본소득이 ‘가장 구체적이고 현실적이며 유일한 대안’이라고 결론을 내렸다. 물론 이것은 매우 경솔한 결론이다. 그동안 대단하게 이 사회에 대해 고민을 한 것도 아니고, 기본소득에 대해 더 공부를 한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사회적 파급력으로 따지자면 혁명에 맞먹을 수도 있는 이 논의에 대해 이렇게 성의 없이 찬동하는 것은, 평소 나름 진중한 편이었던(!) 내 스타일과도 맞지 않는 일이다.

내가 경솔하게, 기본소득을 외치는 이유는 그것들(경솔함과 기본소득)이 지금 시대에 가장 필요한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특히 요즘 청년의 삶에서 경솔함과 기본소득은 가장 귀한 것이 아닐까. 먼저 경솔함에 대해 생각해 보자. 이 사회의 기성세대는 청년들에게 늘 진지하고 도덕적이고 올바르기를 요구한다. 자신들도 맞추지 못하는 그 잣대에서 조금만 벗어나면 곧바로 ‘개XX’나 ‘미생’이 되어 그들의 프레임 안에서 ‘존재하지 않는 존재’가 되어버린다. 그래서인지 사회에서 인정받는 뭔가를 하는 젊은이들은 죄다 애늙은이처럼 행동한다(즉 재미없고 답답하다). 반면 프레임 밖에서 경쾌하게 행동하는 이들은 웬만큼 미디어의 관심을 받지 못하면 절대 프레임 안으로 진입하지 못한다. 이건 정말 아니지 않나. 프레임 밖에서 프레임 안으로 들어와서 프레임을 변화시키는 사람들이 없다면, 그 사회는 이미 망한 거나 다름없다.

문화적으로, 혹은 청년들의 입장에서 ‘황금시대’였다고 일컬어지는 90년대의 시대정신은 다른 무엇도 아닌 ‘흥청망청’이었다. 오렌지족이니 하는 것들은 소수였지만 평균적인 청년들도 책임감 없이 경솔하게, 큰 고민 없이 막 살았다. 하지만 그들에게는 일정한 권력이 있었다. 그리고 그 권력은 그들이 가진 실질 가처분소득이 역사상 가장 높았기 때문에 형성된 것일 게다. 반면 청춘들이 ‘푸른 낙엽’처럼 우수수 길바닥에 떨어져 나뒹구는 사회에는 미래가 없다. 지금의 20대들은 뼈 빠지게 알바를 뛰어도 대학 등록금과 취업사교육비 때문에 빚 밖에 남지 않는다. 실질 가처분소득이 마이너스라는 얘기다. 여기서는 어떤 희망도 쉽게 싹을 틔울 수가 없다. 청년들이 힘과 희망을 가져야 사회에 동력이 생기고 이른바 ‘창의산업’과 같은 미래지향적 산업도 부흥된다. ‘공무원 산업’이 우리 미래를 책임질 수 있다면 모를까, 공무원이 최고일 수밖에 없는 지금의 흐름은 이 나라 경제를 조만간 박살낼 것임에 틀림없다.

기본소득을, 경제수준이 북유럽 정도 되어야 꿀 수 있는 꿈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는 한국예술인복지재단의 ‘예술인 긴급복지’ 혹은 ‘창작지원금’ 제도를 들여다보라고 말하고 싶다. 비합리적인 노동환경 속에서 고립사한 영화예술인 최고은씨의 죽음으로 인해 만들어진 예술인복지재단에서는, 경제적으로 어려움에 놓인 예술인들이 창작활동을 이어나갈 수 있도록 몇 개월 동안 ‘대가 없이 생활비를 지불하는’ 제도를 운영해 왔다. 여러 가지 운영상 논란과 개념상 차이를 제외하고 본질만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기본소득과 흡사한 점이 있다. 그 중에 가장 중요한 것은 예술가들이 자존감을 되찾고 자신의 작품에 집중할 수 있게 되었다는 대목이다.

여기서 길게 쓸 수는 없지만, 내가 운영하고 있는 사회적 기업 <유자살롱>의 관심사는 여러 가지 이유에서 ‘일하지 않고, 일할 수 없는 사람들’인 니트(NEET : Not in Education, Employment or Training) 상태의 청년들이다. 한국사회에는 가뜩이나 인구가 줄어서 걱정인데 노동시장에서 사라져가는 사람들이 청년층의 17.2%나 된다. 그들이 사회로 복귀할 수 있는 마중물을 마련하기 위해서도 기본소득은 절실하게 필요하다. 아프니까 청춘이라고만 하지 말고, 아프면 치료비를 줘야 하지 않겠는가.

이 글은 내가 기억하는 한 가장 경솔하게 쓴 글이다. 여러 가지 허점도 많고 사실관계가 검증되지 않은 곳도 있을 것이다. 기본소득을 지나치게 청년 임파워링(empowering) 관점으로 좁게 해석하고 있기도 하다. 하지만 나는 그러한 경솔함 자체도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만약 이 사회를 바꿀 수 있는 대안을 외치기 위해 필수적으로 ‘자본’이나 ‘제국’ 같은 무거운 텍스트들을 읽어야 한다면, 나를 포함한 다수의 사람들은 곧바로 포기하고 말 것이다. 기본소득은 천리길이다. 분명히 진중하고 적확한 연구를 하는 사람들도 필요하겠지만, 나처럼 경솔하게 첫 걸음을 떼는 사람들도 있어야 한다. 일단 우리에게는 빨리 한 걸음을 떼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글_ 아키(이충한, 유자살롱 공동대표. facebook.com/akiichoongh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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