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시민 수당을 주장한 여성 해방 활동가들을 여기 이 자리에 다시 부르다

오피니언: 시민 수당을 주장한 여성 해방 활동가들을 여기 이 자리에 다시 부르다 / 도루 야마모리 / 2015. 4. 17

기사 원문은 다음 링크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http://www.basicincome.org/news/2015/04/opinion-reclaiming-the-womens-liberationist-demand-for-a-citizens-income/


잉글랜드와 웨일즈의 녹색당, 스코틀랜드 녹색당의 노력으로 영국은 다가오는 2015년 5월 7일에 ‘시민 수당’ 즉 ‘기본소득’을 정치 의제로써 총선거에 부칠 예정이다. 이 논제는 그간 영국 내 매체 보도를 통해 빠르게 번져나가고 있었다.

ITV 시청자 투표 중 녹색당 파트에서는 ‘미래에 가능할 정부 정책’으로 제시한 8개 선지 가운데 하나로 기본소득을 묻고 있었다. 결과는 “지지한다” 36%, “지지하지 않는다” 40%, “모르겠다” 23%였다. “모르겠다”로 답한 비율 23%는 다음 4가지 정책 지지도보다 낮은데, 즉 ‘천연 자원 소비를 낮추기 위해 영국 경제 규모를 점진적으로 줄인다’ 37%, ‘(대형)슈퍼마켓의 신규 개점을 제한한다’ 26%, ‘풋볼 경기장 신축을 제한한다’ 33%, 그리고 ‘인구 규모를 축소하는 방안을 모색한다’ 28% 등이다. 이는 사람들이 녹색당의 앞선 네 가지 공약에 대해서 보다 기본소득에 대해 더 명확한 의견을 가지고 있음을 뜻한다. 그에 찬성하든 반대하든 말이다.

매체들이 기본소득 방안을 보도하고, 사람들이 이에 대한 의견을 갖는다. 여기까진 좋다. 그러나 보도되는 일부 의견들을 제외하면, 영국 내 페미니즘 활동가들이 그간 기본소득을 오랫동안 요구해왔다는 사실이 알려진 곳은 매체든 다른 어디든 거의 없다. 심지어는 많은 페미니스트들이 집단적으로 이런 역사적 사실을 잊어온 듯 보이기도 한다. 따라서 이를 상기시키고자 한다.

19774, 9회 전국여성해방대회 National Women’s Liberation Conference가 런던에서 열렸다. 여기서 최소보장소득Guaranteed Minimum Income을 공개적으로 지지함으로써 영국 여성들의 해방운동을 도모하고자 하는 결의안이 다수결 채택되었고, 대략 2,500~3,000명 가까이 되는 여성들이 참석했다.

결의안은 청구인 조합Claimants Unions 소속 여성들이 제기했고, 그들이 제시한 ‘최소보장소득’이란 무조건적인 기본소득 즉 시민 수당이었다. 그들은 1970년부터 이를 주장하고 또 이를 위해 활동해왔다.

 

이 여성들은 누구였는가? 왜 이들은 시민 수당을 주장했는가? 학회 당시 결의안 연설인 중 하나였던 Julia Mainwaring은 “이 주장은 우리들 각자마다의 경험에서 비롯되었다” 고 회고한다. 그는 웨일즈의 작은 광산 마을에서 나고 자랐는데, 그 마을에 사는 성인들 대다수는 직업이 없었다. 그는 버밍햄으로 건너가 다른 몇 사람들과 함께 1968년 첫 ‘청구인 조합’을 결성했다. 그들은 단체를 ‘(실업 등으로 인한) 수당을 청구하는 사람들을 돕는 이들의 노동조합’으로 정의한다. 조합이 결성되고 1년 사이에 150명이 가입했고, 몇 년 동안 영국 내 도시와 소도시들에 청구인 조합 90여 개가 생겨났다. 197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GLC (대런던 시의회)나 지역 자치단체에서 공급되던 런던의 공영주택은 공급처를 불문하고 임대차계약서에 오로지 남편 명의만을 올리도록 되어있었고, 법적으로 혼인한 여성은 그럴 수 없었다. Mainwaring은 이에 소송을 제기해 승소했다. (기사 본문에서의 사진 1은 Mainwaring이 승소한 날 당시 찍은 사진과 함께 있는 모습이다.)

Mainwaring을 포함한 청구인조합의 많은 여성들은 노동자 계층 출신이었고 다수가 싱글맘이었는데, 이들은 이른바 ‘sex snoopers’라 불리는 복지 담당 공무원들로부터 계속해서 시달려왔다. 공무원들이 싱글맘 각자에게 스파이처럼 붙어 밤늦은 시각에 ‘임의 추출 조사’를 다니기 때문이었다. 만약 여성 조합원이 어떤 남성과 성적 관계를 가지면, 공무원은 그가 그 남자로부터 지원을 받는다고 상정하곤 했다. 설사 단순한 친구 사이라 하더라도, 예를 들어 남성 이웃이 집에 잠깐 들러 수도꼭지나 전구를 봐주는 상황이어도 그 이웃은 파트너나 애인으로 간주되었다. 그러면 그 다음 주에 복지 지원이 중단되는 것이다. 이들은 이를 사적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구조적이고도 제도적인 성차별이 배후에 있음을 감지해냈다. 상황을 종결 짓기 위해, 이들은 시민 수당 아이디어를 조직해냈다. 아무런 자산 조사가 없으므로 이를 위한 염탐도 그로 의한 굴욕도 허락하지 않는 개념으로써 한 제안이었다.

성차별은 여전히 존재한다. 1970년대부터 그 야만성이 미미하게 감소되어왔다면 말이다. 이 노동연금부 홍보 동영상을 보고 나서도 잘못된 것을 인지할 수 없다면 노동연금부와 똑같은 성차별주의를 갖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다. 여성이 그의 남자친구를 수발 들며 그의 옷을 다려준다든가 한다면 그는 틀림없이 남자친구로부터 재정 지원을 받고 있는 거라고 믿는 것 말이다.

따라서 내게는 청구인조합 소속 여성들이 제도적 성차별에 맞서 벌인 투쟁과 페미니스트들이 시민 수당에 갖는 근본 이유가 여전히 현대 영국 진보 정치와 관련되어 보인다. 그러나 꽤 이상하게도, 영국 내 페미니즘과 시민 수당에 대한 문헌은 이 페미니스트 투쟁과 주장에 침묵하고 있다. 영국 여성 해방운동에서 주장하는 요구 가운데 하나로써 공식적으로 또 민주적으로 지지 받았던 이 투쟁과 요구는 어째서 영국 페미니스트들의 집단 기억에서 사라진 걸까?

여기서는 그 이유를 추적하지 않을 것이다. 대신 청구인조합 여성들 스스로의 주장과 그 표현을, 여성 해방운동 포스터 Spare Rib 기사 안에서 서로 비교해보도록 하자. Spare Rib 4호 (1972) 는 청구인들의 시위와 그 내용을 텍스트로 담은 사진을 보여주고 있다. (본문 사진 2 좌측) 같은 사진이 1973년 세계 여성의 날 포스터에 쓰였으나 디테일이 다소 수정된 버전이었는데, (본문 사진 2 우측) 남자가 삭제되었고 여자가 들고 있는 플래카드의 슬로건도 “동거생활법Cohabitation Rule 철폐” 에서 “동일 임금”과 그 외 다른 주장들로 바뀌어 있다. 플래카드에 명기된 단체의 이름은 “청구인조합” 에서 “여성 해방운동 워크샵” 으로 바뀌어 있다. 이런 편집에 어떤 악의적인 동기가 있었다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그러나 이후 세대 페미니스트 사학자들은 자칫 사실과 다르게 인식할 수 있을 것이다.)

1973년 세계 여성의 날에 청구인 여성들이 런던에서 있었던 시위에 많이 참가했다. 뉴캐슬 청구인조합원이었던 Lyn Boyd와 Rosemary Robson은 가족수당을 폐지하고 이를 세액 공제로 대체할 계획이 있는 정부에 대항해 다른 이들과 함께 시위하다가 체포되었다 (본문 사진 3: 왼쪽이 Robson, 오른쪽이 Boyd다.) 가족수당은 여성에게 주어지지만, 세금 공제는 남성에게 주어지기로 되어있었다. 청구인 여성들은 시민 수당이 여성의 경제적 독립을 위해 필요한 조건이라 여겼고 (영국 여성 해방 운동의 ‘5번째 요구’에 해당한다) 이를 위한 첫 단계가 가족수당을 지키고 확장시키는 것이었다.

Boyd는 노스 더햄의 채광 공동체에서 태어났다. 그는 청구인조합 활동이 그들로 하여금 ‘스스로가 떳떳이 설 수 있도록 식견을 쌓아, 제 권리를 위해 머리를 조아리며 부탁하는 것이 아니라 동등한 위치에서 싸울 수 있’도록 했다고 묘사한다. 청구인조합과 관련되면서 그는 여성 해방 운동에도 참가했다. Boyd와 Robson, 여타 다른 여성 청구인조합원들은 런던에서 열린 여성해방학회 등에 편승했다. Boyd는 당시를 이렇게 회상한다. “그들은 삶과 협동에 있어서 더 나은 방법이 무엇인지를 찾아왔던 것 같다. 청구인조합과 여성권 운동은 그 방법을 이루기 위한 한 선언이었다.”

5년 뒤, Spare Rib 58호(1977)는 “최소보장소득”을 요구하는 결의안이 전국여성해방운동대회에서 통과되었다고 보도했다. 이상하게도, 기사는 “최소보장소득”이 무엇이고 누가 결의안을 제시했으며 왜 그랬는지 등은 독자들에게 아무것도 언급하지 않으면서, 이에 반대하는 이들은 누구이며 그 근거는 무엇인지에 대해서 보도하고 있었다.

청구인조합의 Mainwaring, Boyd, Robson과 다른 여성들은 이 페미니즘, 진보 정치계에 퍼진 집단 건망증의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할까? 그리고 더 나아가, 그들의 생각과 행동은 페미니즘과 어떻게 관련되었는가? 그들의 주장은 다음 기사에 기록되어 있다. <무조건적 기본 소득을 위한 페미니즘적 방법: 1970년대 영국에서 있었던 청구인조합과 여성해방운동에 대해>, 기본소득 연구 9 (1-2), 2014, pp,1-24. 더 많은 내용이 담긴 이전 버전은 여기에서 읽을 수 있다.

시민 수당은 제도적인 한 형태로 굳어진 성차별주의를 종결 짓기 위해 필요하다. 이것이 내가 이들 여성들로부터 배운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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