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본소득아시아네트워크 칼럼] (1) 일본의 기본소득과 페미니즘 (카오리 카타다)

최근 세계 곳곳에서 기본소득이 중요한 주제로 떠올랐습니다. 스위스에서는 기본소득 도입을 위한 국민투표가 있었고, 네덜란드와 핀란드에서는 기본소득 실험을 기획하고 있으며, 한국의 성남시에서는 청년배당이 실시되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다양한 이유로 기본소득을 지지합니다. 일본의 기본소득 연구자인 야마모리 도루는 ‘기본소득을 실현하는 과정이 여성의 잊혀진 권리를 찾는 과정과 닿아있다’고 말합니다. 기본소득은 모두가 동등한 권리를 지닌 시민임을 전제로 하지만, 현대사회에서 아직도 여성은 온전한 시민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것이 사실입니다. 때문에 사회에 드리워진 차별의 그림자를 지워나가는 과정은, 기본소득을 실현해나가는 과정과 멀지 않습니다.

다른 사회 운동들과 마찬가지로 기본소득 운동 역시 유럽 중심, 남성 중심, 연구자 중심이라는 지적에서 자유롭지 못합니다.

남성 연구자/운동가들의 의견은 접하기 쉬운데 반해 여성 활동가의 목소리는 듣기 어려울 때가 많습니다. 현장이나 실무의 중심에는 유능한 여성 활동가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말입니다.

기본소득청’소’년네트워크는 이번 칼럼 연재를 통해 동아시아의 기본소득 지지자와 활동가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려고 합니다. 특히 여성 활동가들의 이야기를요.

서구와는 다른 맥락을 가진, 복잡한 아시아의 상황 속에서 연구하고 활동하는 여성 연구자, 활동가들의 이야기를 통해 공통의 새로운 지도를 그려보면 어떨까요. 그리고 그 지도를 통해 미래를 함께 도모할 수 있기를 희망해봅니다.

 

 


 

[기본소득아시아네트워크 칼럼]

<일본의 기본소득과 페미니즘>

– 카오리 카타다, 일본 호세이 대학교 (katadakaori@gmail.com)

 

기본소득(Basic Income, BI)은 모든 개인에게 조건 없이 소득을 보장하는 정책입니다. 기본소득은 노동, 가정, 젠더, 소득 또는 재산으로 사람을 구별하지 않습니다. 그저 살아있다는 이유로 사람들은 기본소득을 요구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요구는 삶에서 핵심적인 것이지요. 우리의 삶이란 우리가 웃고, 춤추고, 노래하고, 화내고, 싸우고, 울고, 글 쓰고, 꿈꾸고, 보살피고, 사랑하면서 충만하게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런 삶은 창조성과 생산성을 북돋아줍니다.

저는 두 가지 이유에서 기본소득을 요구하기 시작했습니다. 첫 번째 이유는 간단합니다. 빈곤선(poverty-line)(각주1)의 경계에 걸친 채 살아가는 대학원생으로서, 저는 물질적인 필요를 위해서 기본소득을 원했습니다. 제가 기본소득 개념을 처음 접했을 당시에, 저는 대학원에 다니기 위해서 ‘장학금(일본의 상황에서 이것은 아주 부적절한 명칭인데, 이 단어가 의미하는 바는 사실 학생 대출이기 때문이지요.)’을 받고, 거의 매일 ‘시간제(part-time)’ 일을 하고 있었습니다. 책도 거의 살 수 없었기 때문에 마음이 괴로웠습니다. 날마다 제가 살아가는 부조리한 현실 속에서 분노했습니다.

바로 그 무렵이 제가 처음으로 기본소득 개념을 마주한 때였고, 저는 기본소득이 제가 사랑하는 것을 공부하면서도 동시에 충만한 삶을 살 수 있게 해준다는걸 알았습니다.

제가 기본소득을 요구하게 된 두 번째 이유는 제 연구 주제 때문입니다. 저의 연구 주제는 빈곤과 빈곤 퇴치 전략, 그리고 사회 부조(social assistance)입니다. 자본주의의 태동에서부터 빈곤층에 대한 사회 부조는 지속적으로 이어져왔지만, [그 대상은] 항상 임금 노동자 중 빈곤층이었습니다. 또한 이때 빈곤층은 ‘가난할 만해서 가난한 사람들’ 또는 ‘지나치게 많은 도움을 받아서는 안 되는 가난한 사람들(the underserving poor)’로 범주화되고 등급 매겨졌습니다. 이때 평가의 잣대는 일할 수 있는 능력 대(versus) 그러한 능력의 부재, 일하고자 하는 의지 대(versus) 그러한 의지의 부재가 되었습니다. 현재의 사회 부조 시스템은 임금 노동이 핵심인 사회 구조를 반영하고 있습니다. 게다가 그러한 시스템은 남성에게 유리하고 여성에게 불리한 현재의 젠더 위계를 지속시켰습니다. 노동과 젠더에 기반을 두고 이루어지는 범주화와 등급 매기기는 낙인과 사회적 분화(Social Division)를 낳았습니다. 현존하는 사회 부조 제도에 대해 회의적인 입장을 가진 저로서는 기본소득 개념을 희망적인 신호로 받아들이게 되었는데, 기본소득 개념을 통해서 임금 노동의 지배적 상황을 뒤집고 현재의 젠더 위계질서를 개혁할 수 있다고 보았기 때문입니다. 이런 점에서 기본소득은 분리를 거부하고 진정한 평등을 요구하는 개념입니다.

따라서 저는 연구자이자 활동가로서 기본소득을 요구합니다. 2005년 무렵부터 기본소득이라는 발상이 주목받기 시작했고, 저는 일본 근방에서 이루어진 여러 대회 및 학술 토론회에 발표자로 초청받기 시작했습니다. 이때 발표를 요청했던 대다수가 여성 집단, 장애인, ‘프레카리아트(precariat)’였다는 사실은 매우 흥미롭습니다. 참고로 ‘프레카리아트’란 임금 노동으로부터 주변화되거나 배제 당한 사람들을 일컫는 용어입니다. 2008년에 도쿄에서 개최된 프레카리아트 대회와 노동절 시위에서는 처음으로 기본소득을 주제 안건으로 삼기도 했습니다. 기본소득은 임금 노동이 핵심이 되는 구조를 제거하는 아이디어이기에, 임금 노동에서 배제되거나 혹은 주변화된 사람들 사이에서 반향을 일으켰습니다.

기본소득 개념이 사회적으로 퍼지자, 기본소득과 관련하여 최소 세 가지 영역에서 분리가 심화되었습니다. 첫 번째로 학계에 있는 남성과 여성의 분리입니다. 일례로 2009년에 연구자들이 ‘일본 기본소득 네트워크(BIJN)’를 설립했을 때, 총 열 명의 창시자 중 여성은 단 한 명 뿐이었습니다. (어쩌다보니 그 한 명이 바로 제가 되었네요.) 기본소득 관련 학계는 젠더를 인식하지 못하고 있음이 확실했습니다. 두 번째는 연구자와 활동가의 분리입니다. 기본소득에 대한 사회적 요구를 제고하려면 연구자와 활동가들의 협업이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불행하게도 지금까지는 그런 사례가 없었습니다. 일본 기본소득 네트워크가 노력을 확장해나갈수록 연구자들과 활동가들의 관심사는 점점 반목하게 되었고, 그로 인해 연대는 약해졌으며 겨우 몇 가지의 연대 사례만이 남았을 뿐입니다. 세 번째는 페미니스트 운동 내부의 분리입니다. 제게 인상적으로 기억되는 한 사건이 있습니다. 2010년, 저는 여성과 빈곤 네트워크(Woman and Poverty Network) 대회에 초대되어 기본소득에 대해 발표한 적이 있습니다. 저의 발표가 끝나자마자, 한 여성이 일어나 이렇게 이야기했습니다. “우리는 비현실적인 이야기나 들으려고 여기 온 것이 아니다. 지금 당장 논의해야 하는 사안은 현존하는 사회 보장 제도 체계를 어떻게 보전할 수 있는가 하는 문제다.” 이렇게 말한 여성과 같은 생각을 하는 여성들에게 기본소득이란 진지하게 고려해서도 안되는, 본질적으로 터무니없는 유토피아적 개념인 것이지요.

구분을 지양하고 평등을 고취하는 개념인 기본소득을 둘러싸고 이와 같은 분리들이 나타나는 것을 보면서 저는 매우 안타깝고 불안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저는 연구자로서의 입장과 활동가로서의 입장 사이에서 흔들리기 시작했습니다. 당시 저는 이처럼 결실 없는 분리에 대한 극복 방안을 모색하기 위하여 멋진 사람들과 함께 두 가지 프로젝트를 시작했는데, 제 연구에 이때의 상황이 나타나 있습니다. 한 프로젝트는 동료 페미니스트들과 함께 기본소득에 대한 독특한 책(각주2)을 만드는 것이었습니다. 우리는 책을 만들 때 다음의 조건들을 충족하도록 기획했습니다. 1) 학계에서 잊혔거나 무시된 풀뿌리 현장의 목소리를 조명하는 것, 2) 남성의 목소리에 묻힌 여성들의 목소리를 조명하는 것, 3) 다양한 입장의 여성들로부터 그들의 목소리를 수집하는 것입니다. 이 책은 결과적으로 특별한 작업이 되었는데, 싱글맘(single mother), 레즈비언, 가정 폭력 생존자, 학생, 예술가, 사회적 노동자, 남녀 동일 임금 활동가(equal pay activist) 등 다양한 입장에 있는 사람들과 함께 기본소득 논의를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이 책은 일본에서는 처음으로 젠더 관점에서 쓰인 기본소득 서적이었고, 다양한 여성 집단을 드러내는 증거 모음집이기도 했습니다.

다음으로 제가 참여했던 프로젝트는 ‘유루-페미(Yuru-Femi) 카페’(편안한 분위기의 페미니즘 카페라는 뜻)  프로젝트로, 연구자뿐만 아니라 예술가들, 학생들, 활동가들, 편집자들에 의해 구성됐습니다. 그들은 주로 20대에서 30대로, 상대적으로 젊은 사람들이었습니다. 이 그룹의 목표는 상냥하고 친밀한 태도와 ‘친구와 차 한 잔 하는 것 같은’ 일상성 속에서 (당시로서는 공격적일 수 있는) 페미니즘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었습니다. 또한 자립 그룹이 으레 그러하듯이, 이 그룹 역시도 당시 이 그룹과 관련된 개별 여성들에게 역량 강화(empowerment)의 공간으로서 기능하고 있었습니다. 이 그룹의 주된 초점은 기본소득이 아니었지만, 각 구성원들은 각자의 의제에  적극적이었으며 대부분이 기본적으로 기본소득 개념에 동의했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기본소득이 삶에 창조성과 생산성의 씨앗을 뿌리는 가장 기본적인 필요조건 중 하나임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지금으로서는 기본소득이 비현실적이고 이상적인 개념으로 들릴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우리가 터무니없는 꿈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그 누가 말할 수 있을까요? 우리가 이상적인 개념들에 대해 이야기할 수는 없다고 그 누가 말할 수 있겠습니까? 대안의(alternative) 세상에서 기본소득은 실재로서 존재한다는 것을 기억해주세요. 그리고 이것 또한 잊지마세요. 우리의 현실이 된 국가 건강 보험 또는 연금 제도가 100년 전에는 이상적인 이야기로 들렸다는 것을 말입니다. 저는 우리가 계속 우리의 꿈을 좇을 수 있도록, 모두 함께 기본소득을 현실로 만들어나가기를 제안합니다.

 

각주1) ‘빈곤선’ 또는 ‘궁핍선’이란 경제학에서 빈곤의 넓이와 깊이를 측정하는 척도로 사용되는 일정한 생활 기준을 뜻하는 용어입니다. (옮긴이)

각주 2) Katada, K. and others. 2011. Basic Income and Gender. Gendai Shokan, Tokyo. (글쓴이)

 

번역: 루리 클락슨(일영), 강민형(영한)

편집: 스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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