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본소득아시아네트워크 칼럼] (2) 나는 왜 기본소득을 지지하는가? (박이은실)

최근 세계 곳곳에서 기본소득이 중요한 주제로 떠올랐습니다. 스위스에서는 기본소득 도입을 위한 국민투표가 있었고, 네덜란드와 핀란드에서는 기본소득 실험을 기획하고 있으며, 한국의 성남시에서는 청년배당이 실시되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다양한 이유로 기본소득을 지지합니다. 일본의 기본소득 연구자인 야마모리 도루는 ‘기본소득을 실현하는 과정이 여성의 잊혀진 권리를 찾는 과정과 닿아있다’고 말합니다. 기본소득은 모두가 동등한 권리를 지닌 시민임을 전제로 하지만, 현대사회에서 아직도 여성은 온전한 시민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것이 사실입니다. 때문에 사회에 드리워진 차별의 그림자를 지워나가는 과정은, 기본소득을 실현해나가는 과정과 멀지 않습니다.

다른 사회 운동들과 마찬가지로 기본소득 운동 역시 유럽 중심, 남성 중심, 연구자 중심이라는 지적에서 자유롭지 못합니다.
남성 연구자/운동가들의 의견은 접하기 쉬운데 반해 여성 활동가의 목소리는 듣기 어려울 때가 많습니다. 현장이나 실무의 중심에는 유능한 여성 활동가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말입니다.

기본소득청’소’년네트워크는 이번 칼럼 연재를 통해 동아시아의 기본소득 지지자와 활동가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려고 합니다. 특히 여성 활동가들의 이야기를요.

서구와는 다른 맥락을 가진, 복잡한 아시아의 상황 속에서 연구하고 활동하는 여성 연구자, 활동가들의 이야기를 통해 공통의 새로운 지도를 그려보면 어떨까요. 그리고 그 지도를 통해 미래를 함께 도모할 수 있기를 희망해봅니다.

 


 

[기본소득아시아네트워크 칼럼]

<나는 왜 기본소득을 지지하는가?>

– 박이은실, 여성문화이론연구소

 

나는 여성학자다. 제도권 안팎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며 연구자로 살고 있다. 1995년에 대학을 졸업한 후 직장생활과 사회단체 생활을 몇 년 하다가 2003년에 대학원에 진학해, 2005년에 석사학위를, 2010년에 박사학위를 받았다. 2011년-2013년까지 3년동안 기본소득한국네트워크에서 기본소득 연구자이자 운영위원으로서 활발한 활동을 했고 전임연구원으로서의 계약기간이 끝난 지금은 기본소득한국네트워크 회원이자 기본소득지구네트워크 평생회원으로 있다. 여러 가지 사정으로 예전만큼 활발히 기본소득 운동에 참여하지는 못하고 있지만 기회있을 때마다 사람들에게 기본소득에 대해 이야기한다.

늘 성실하게 일하지만 가난했던 부모님에게서 태어난 나는 학부 때도, 대학원 때도 공부를 하는 내내 가난한 학생이었다. 대학원 공부는 사회운동을 하다가 필요한 부분이 있는데 다른 연구자들이 많은 관심을 가진 분야가 아니라서 직접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시작했다. 공부를 하다보면 이 길이 내 길인가 싶어지는 때도 없지는 않지만 대체로 나는 연구자로 사는 지금의 삶에 만족한다. 공부하고 글을 쓰고 강의를 하면서 문제적인 사안들에 대해 알리고 그것을 해결하는 움직임에 동참하는 활동은 그 자체가 의미있을 뿐만 아니라 훌륭한 노동양식이자 삶의 방식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세상은 자신이 하는 일이 사회적으로 얼마나 의미가 있고 스스로 얼마나 만족감을 느끼는지와는 상관없이 굴러간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얼만큼의 돈이 있는가이고 그 돈이 또 얼만큼의 돈을 만들어 내는가다. 특히나 요즘은 학계나 교육계가 굴러가는 원리도 크게 다르지 않다. 대학이 지성의 본당이니 지혜의 요람이라는 말은 유물이 된지 오래다.

지금 돈이 없거나 돈이 돈을 만드는 일에 종사하지 않는 이들은 자신이 무슨 일을 하는지와 상관없이 사회의 천덕꾸러기 대접을 받는다. 또한 그들은 지금 이미 가난하지만 앞으로는 더 가난해 질 가능성이 높다.

나와 같이 교육을 많이 받은 여성도 하물며 이러니 그렇지 않은 여성들의 삶은 말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여성들은 이미 오래전부터 저임금에 장시간노동을 요구하는 직종으로 떠밀려왔고 앞으로는 그런 일자리 마저도 로봇이 대체하게 될 것이라고 하니 이 여성들이 더 이상 어디로 밀려날 수 있을지 가늠하기조차 쉽지 않다. 다만 상황이 더 나빠질 것이라는 점은 대체로 이견이 없는 예측인 것같다. 페미니스트로서 내가 특히 주목해 온 여성들인 미혼모, 성노동자, 비이성애자 여성 등은 이미 그동안 여러 가지로 주변화되어 왔던 사람들이다. 앞으로 이들의 삶은 더 힘들어 질 것이다.

1월 29일은 촉망받던 한 여성 시나리오 작가였던 최고은 작가의 기일이다. 그는 삼십대라는 젊은 나이에 병마와 가난에 시달리다가 홀로 짧은 생을 마감했다. OECD 회원국이라는 한국에서 고작 몇 년 전에 일어난 일이다. 이후 유사한 죽음들이 연이어 일어나고 있다. 상황이 바뀌지 않는다면 앞으로 계속 더 많은 사람들이 병마와 가난에 시달리다가 죽어가거나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일도 늘어날 것이다. 한국은 이미 초고령 사회에 접어들었고 수명까지 늘어나 한국의 여성들이 빈곤 노인으로 살아가야 할 시간 또한 그만큼 늘어나고 있다.

기본소득은 이런 상황에서 모두에게 내려질 생명줄과 같은 것이다. 부여잡고 의지해 삶을 이어가고 관계를 이어가고 꿈을 이어가고 시도를 이어가고 사회를 유지해갈 수 있는 생명줄말이다. 그러니 어떻게 기본소득 도입을 지지하지 않을 수 있을까? 지속가능한 삶을 위해, 최소한 인간답게 살기 위해 우리 모두에게는 당장 기본소득 이상의 다른 답은 없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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