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표1] BIYN 지난 줄거리 (스밀라, BIYN 대변인)

나와 당신의 이야기로

많은 일이 있었습니다. 이 줄거리의 시작을 어떻게 해야 할지 오랫동안 고민했는데 역시 어울리는 말은 이것입니다. 지난 6년간 참으로 많은 일이 있었습니다.

BIYN이 처음 만들어진 때는 2012년이었습니다. 그때는 한국에서 ‘기본소득’을 알고 있는 사람도 많지 않았던 때였지요. 하지만 모두에게 조건 없이 현금을 지급한다는 이 단순한 아이디어에 매료된 사람들이 존재했고, 각자 자그마한 미래를 마음속에 품은 채 이 조직을 시작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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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전소영)

사실 우리는 꽤 오랜 시간 어처구니없는 이야기를 하는 팀으로 여겨졌습니다. 최근처럼 기본소득이 현실적인 아이디어로 논의되기 전까지 말입니다. 그 와중에 BIYN이 호명되는 순간들은 청년의 이야기가 필요한 몇 안 되는 경우였고, 그마저도 사회에서 통용되는 ‘청년 서사’에 부합하길 요구받았지요. 그러나 우리는 처음부터 기특하거나 불쌍한 청년이 될 생각은 없었습니다. 기본소득을 지지하는 사람은 자신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아는 사람입니다. 그건 곧 자기 자신이 되는 가장 빠른 길이 무엇인지 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그런 사람이 굳이 ‘기특’이나 ‘불쌍’ 같은 우회로를 선택할 이유는 없지요. 물론 때때로 어느 자리에 나가서 나의 말은 아니지만 그 자리에 어울리는 말들을 하고 돌아온 날도 있었습니다. 그런 날은 꼭 자기 전에 후회했지요.

그런 시행착오를 여러 번 거치면서 BIYN 안에는 암묵적인 약속이 생겼습니다. 우리의 말이 무엇인지 파악하고 그게 아니라면 하지 말자. 처음엔 사회가 요구하는 청년의 서사를 이겨낼 수 있을지 반신반의했지만, 결국 깨달은 것은 기존 서사의 압력을 이겨내고 우리 이야기를 해야 한다는 점이었습니다. 왜냐면 우리에겐 이 이야기가 필요하고 중요하지만 대신해주는 이가 없었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우리는 기존의 운동에서는 약간씩 비껴서 서 있을 수밖에 없었고, 그것이 주는 득도 실도 있었습니다. 득이라면 우리 고유의 관점을 계속 형성하면서 그를 알아보는 사람들과 공명할 수 있었다는 점일 테고, 실이라면 역시 그 관점을 알아보는 사람이 적어서 인기가 없었다는 것이겠죠. 어쨌든 우리는 원하는 곳으로 곧장 가는 길을 택했습니다.

하지만 그 길이 항상 제일 짧고 빠르고 쉬운 길을 의미하지는 않겠죠. 생긴 지 얼마 되지 않은, 돈도, 자원도 없는 BIYN은 기본소득이라는 아젠다가 실은 어처구니가 있다고 설명하는 데에 꽤 오랜 시간을 썼던 것 같습니다. 물론 이 역시도 필수적인 작업이었지만 말입니다. 이는 단순히 기본소득이라는 단일한 정책에 관한 설명은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기본소득이 사회에 가져다주는 다양한 상상력과 효용에 대해, 우리가 응당 가져야 할 권리들과 안전망에 대해 설명하는 일이었죠. 그것은 길을 막고 있는 바위를 굴리고, 풀숲을 헤쳐 열매를 찾고, 진창에 빠지고, 끊어진 길을 다시 잇는 작업에 가까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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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일환으로 메이데이 총파업을 기획하고(2012년), 공공그라운드를 열어 다양한 주제들을 기본소득과 연결하고(2014년, 2015년), 전국을 돌며 기본소득 투어를 했고(기본소득 전국투어/2015년, 2017년), 전 지구적 기본소득 운동에도 기여했으며(기본소득 지구총회/2014년, 2016년), 청년당사자로서 한국의 기본소득 유사 정책을 관찰하고(성남시 청년배당 모니터링, 서울시 청년수당 수령기/2016년), 다양한 정책 테이블과 논의 과정에 참여했습니다. 특히 그 과정에서 여성 청년 당사자로서의 문제에 골몰해왔고 말입니다.

지난 분기에는 이 활동들의 관점을 갈래로 나누어서 1) 기본소득을 접점으로 더 많은 시민을 만나고 기본소득을 자신의 삶에서 구체적으로 상상해보게 하는 활동(내가그린기린그림 워크숍), 2) 다양한 사회적 아젠다와 기본소득을 연결하는 활동(기본소득 30분 트레이닝 팟캐스트), 3 )BIYN의 관점을 뾰족하게 만들어 사회로 발신하는 활동(도서기획), 4)BIYN의 외적 구조를 만드는 작업(홈페이지 리브랜딩), 5)페미니즘의 관점에서 조직을 재구성하는 작업(성평등 규약 프로젝트)을 진행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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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으로 쉽지만은 않은 길이었습니다. 한국에서 기본소득이 실현되지 않았다는 것은 우리 모두 아는 사실이니, 이 길이 앞으로 더 남았다는 것도 모두 알고 계시겠지요.

그런데 우리는 이 여정을 계속해나갈 수 있을까요? 사실 이 리-런칭 파티는 이 질문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우리는 어디서 무엇으로

BIYN은 회원들의 후원으로 운영되는 단체로, 그동안 4~6여 명의 운영위원들이 팀을 이루어 활동해왔습니다. 현재 활동하는 운영위원들은 거의 BIYN의 초창기부터 활동해 온 회원들입니다. 20대 중후반이었던 운영위원들이 30대가 되기에 충분한 시간이었죠.

지난해, 롤링다이스와 함께 거꾸로 컨퍼런스라는 행사를 진행하면서 BIYN에 대해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더 정확히 이야기 하자면 ‘우리는 지속할 수 있을까?’에 대한 생각이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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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전소영)

사실 저는 1년 정도 BIYN을 회고하는 행사들을 줄이어 열다가 단체를 해소하면 어떨까도 생각했습니다. BIYN은 애초에 서로에 대한 서늘한 신뢰로 운용되는 조직이고, 서로를 희생시키거나, 한 사람에게 단체의 운명을 맡기는 조직이 아니었으니까요. 각자의 생업을 가지고 있지만 에너지 대부분을 이 활동에 쓰고 있는 상황에서 조직이 더 이상 지속 가능할 것 같지 않았습니다. 일단 저부터 크게 자신이 없었거든요. 이미 6년의 시간 동안 두 번이나 총회가 성사되지 않았던 경험도 있고 말이지요.

하지만 우리는 왜인지 다시 한번 해보기로 했습니다. 완전히 새로운 방식으로 말이지요. 쓸 수 있는 에너지가 20%라면 딱 그만큼 기여하고, 여전히 나의 말을 하면서, 혼자서는 할 수 없어도 함께라면 가능할, 그런 형태로 만들어볼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하면서 말입니다.

이를 위해 우리는 크게 세 가지 변화를 주었습니다. 하나는  BIYN을 명징하게 드러내는 일 – 홈페이지 리브랜딩이고, 다른 둘은 조직의 내적 구조를 바꾸는 일 – 즉 페미니즘의 관점에서 조직을 재구성하는 일과 조직 개편을 통해 더 많은 사람이 더 적은 부담을 지고 더 효과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조직 체계를 갖는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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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BIYN 리-런칭을 소개하는 오늘의 시간을 통해 이 작업을 함께 해나가자고 여러분들에게 제안합니다.

지금 당장 기본소득을 지지하든 하지 않든, 소중한 일요일 오후를 여기에 쓰는 분들이라면 적어도 오늘보다 내일을 더 잘 살고 싶고, 일상의 품위를 지키기 위해 노력하고 싶은 분들일 테니까요. 그렇다면 우리의 운동은 어디서든, 무엇으로든, 만나게 될 것입니다.

이러한 마음으로 BIYN 리-런칭 파티를 시작하려 합니다. 저희의 시작이 누군가에겐 작은 마음의 불꽃이, 누군가에겐 다시 한번 해보고 싶은 마음이 되기를 바라면서 말입니다.

감사합니다.

BIYN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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