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그램 2] 작은 조직에서 성평등 실천하기 (신아, 주연 – BIYN 회원)

– 기록: BIYN 회원 박장미

시작과 소개

시나: 저는 회원 시나라고 하고요, 한국성폭력상담소에서 일한지 1년 정도 되었습니다. 친구들의 권유로 BIYN에 가입을 해서 회원이 된 지는 꽤 됐네요. 여성단체에 속하거나 여성운동을 하지 않고 있을 때 제 관심이 BIYN 활동과 맞닿아서 활동한 경험이 몇 차례 있었습니다. 이 프로젝트도 그런 관심의 연장선에서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주연: 시나씨와 함께 프로젝트를 진행한 주연이라고 합니다. 현재는 웹개발자로 일하고 있고, 학교에서는 문화인류학을 공부했습니다. 저는 2014년도에 BIYN 회원이 되었고 공공그라운드, 여성X기본소득 세미나 등을 기획하고 진행하는 일에 참여하다가 지난 2016년 10월 쯤 부터 운영위원으로 함께 활동하고 있습니다. 반갑습니다.

프로젝트 참여 동기

시나: 상담소에서 일하면서 사건지원매뉴얼을 만드는 사업에 참여했었는데, 사건 해결을 위한 단계를 만들어간다는 것에 매력을 느끼게 됐어요. 이번 규약 만들기 자체에도 관심이 있었고, 성폭력 사건 해결에 대해 더 잘 알게 될 것 같았어요.

주연: 저는 시나씨처럼 실무 일을 진행하는 단체에서 활동한 경험은 없지만, 2016년부터 여러 사건들을 통해 페미니스트로서 저 자신을 보다 적극적으로 자각하고 정체화하기 시작하면서, 그동안 경험한 것들을 ‘여성으로서’ 굉장히 다르게 해석하기 시작했어요. 그중 하나가 제가 왜 그동안 어떤 ‘단체’에 들어갈 때마다 괴롭고 힘들었는지 였습니다. 회사든 작은 조직이든 취미모임이든, 어떤 조직에 들어가든 왜인지 자주 머뭇거렸던 것 같아요.

그러자 단순히 ‘인간관계’의 문제라고 생각했던 것들이 다시 보이기 시작했어요. 반여성주의적 문제였기 때문에 내가 괴로웠던 게 아닐까? 같은 질문, 페미니스트 여성으로서 과연 여기서 내가 하고 싶은 일들을 안전하게 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시작한 것이죠.

그래서 BIYN에서 ‘성평등 매뉴얼’을 만들면 좋겠다고 제안했던 이 프로젝트를 직관적으로 이해하고 바로 뛰어들 수 있었던것 같아요. 여성이 무언가를 하고 싶을 때 왜 이렇게 머뭇거려야 하지? 더 적극적으로 재밌게 활동할 수 있는데. 그런 사람들이 저 말고도 많을거라고 생각하면서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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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전소영)

프로젝트 소개

주연: <작은 조직을 위한 성평등 장치> 프로젝트는 작년 9월부터 올해 4월까지, 꽤 오랜 시간동안 진행되었습니다. 그 결과물로 상시 성평등팀 구성, 성폭력 사건의 사전 예방을 위한 ‘페미니즘 약속문’ 제정, 사건의 해결을 위한 ‘사건처리 규정’을 완성했습니다. 또 이 결과물들이 반영된 반영된 체크리스트, 동의서 등의 2차 장치들도 있습니다.

오늘은 단순히 약속문이나 규정을 소개하는 게 아니라, BIYN이 가진 여러 특징 — 크지 않고, 느슨하고, 유동적이고, 온오프라인에서 함께 활동하는속에서 어떻게 페미니즘에 기반해 활동할 수 있을지 고민하고 장치를 고안해 나간 과정에 대해서 공유해 볼 예정입니다.

프로젝트 과정은 시나씨께서 소개해주실 예정입니다.

제작 과정

시나: 가장 먼저 어떤 레퍼런스를 참고할 것인지 사전 조사했습니다. 그 다음으로는 규약을 바로 만드는 것보다는 구성원들이 성폭력 사건 해결과 성평등에 대해 함께 이해를 공유하는 과정이 있는 게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 워크숍을 진행했어요.

워크숍에서는 하나의 사례를 가정해서 성폭력 사건에서 구성원들이 자기 역할을 고민할 수 있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내가 피해자일 때, 친구일 때, 사건 처리 관계자일 때를 가정해보고 어떤 제도과 어떤 행동들이 있으면 좋을지 논의하고, 성평등과 관련된 여러 단어를 갖고 단체의 가치와 지향, 원칙에 대해서 생각해보는 시간도 가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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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크숍 자료들: 시나, 주연)

워크샵을 진행한 후 주연씨가 약속문을, 제가 사건 처리 규정을 주로 담당해서 작업하기로 정하고 2개월 간 휴식 기간을 가졌습니다. 그런 뒤 올해 1월에 다시 모여 각각의 초안을 작성하고 그것을 바탕으로 운영위와 여러 번 회의를 가치면서 조직에 맞는 내용으로 재점검하는 시간을 가졌어요. 이 과정에서 성평등 팀이라는 상시운영 팀을 만들게 됐고, 변경되는 조직안을 바탕으로 프로젝트 조직에서 할 수 있는 장치들을 만들었습니다.

<페미니즘 약속문>을 만들기 위해 주로 참고한 레퍼런스는 녹색당의 평등문화 약속문이었습니다. <성폭력 사건처리규정>은 서울대 인권센터 규정, 연세대 성폭력 예방 및 처리에 관한 규정, 녹색당 매뉴얼 등을 참고 했습니다. 온라인 성폭력과 관련된 레퍼런스는 이번 매뉴얼 내용에는 반영되어 있진 않지만 이후 사건 처리 실무를 하거나, 이 규약을 다듬어 가는 과정에서 반영이 될 수 있도록 리스트를 마련해 놓은 정도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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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전소영)

이 모든 과정은 천천히 진행됐어요. 저번달에 회고 과정을 거치며 주연씨와 의미가 폭발한다는 농담을 하기도 했었는데(웃음), 각자 어떤 지점에서 좋았고 의미 있는지 생각해보게 됐어요. 공통된 부분은 역시 조직내 성평등 장치를 마련하는 과정을 경험해보는 게 정말 중요하다는 점이었습니다.

회고 과정에서 핀치Pinch라는 여성생활미디어에서 인터뷰를 진행했습니다. 궁금하신 분은 참고해 보세요.

주연: 그래서 처음에는 ‘성평등 규약’이라는 이름으로 뭉뚱그려져 있던 해당 프로젝트는,

1) 모든 BIYN 구성원을 위한 <페미니즘 약속문>,
2) 실무진을 위한 <성폭력 사건 처리 규정>,
3) 활동 현장에서 사용할 수 있는 <체크리스트와 동의서 구현>

등으로 보다 세분화 되었습니다.

프로젝트 타임라인

  • 제안과 사전 미팅(2017.8-9)
  • 총회 때 회원과의 사전 워크숍: 무엇을 중시하는 지 알게 됨(2017.10)
  • 주연-약속문/시나-사건처리 규정으로 나누어 정리해보기로 함(2017.11)
    • 레퍼런스
      • 약속문의 경우 녹색당의 평등문화 약속문을 참고하였고, 이후 보다 명확한 이름으로 변경함
      • 사건처리 규정의 경우 서울대 인권센터 규정, 연세대 성폭력 예방 및 처리에 관한 규정, 녹색당 당내 평등문화 약속문과 매뉴얼, 단하나의 기준-적극적인 합의(2017),성폭력 생존자 권리헌장
      • 사건지원자를 위한 가이드- 나침반을 찾아라(2008), 사이버성폭력피해자지원을 위한 안내서(2017)
      • 워크숍은 한국성폭력상담소의 <다시 시작하는 젠더감수성>(2014)를 참고.
  • 휴식(2017.12-2018.1)
  • 본격적으로 약속문과 사건처리 규정을 만들고, 운영위와 피드백 및 회의 진행(2018.2)
    • 이 과정에서 조직에 맞는 내용으로 본문을 재점검하고,
    • 성평등 팀 등을 만드는 등 조직 편성에도 변화가 생김
    • 변경되는 조직안에 맞도록 각 프로젝트 단위 당 할 수 있는 실천안들(약속문 매 번 숙지, 교육 등)을 만듦
  • 2018.4 총회 때 발표 및 성평등 팀 구성
  • 향후 활동 계획:
    • 이러한 장치를 바탕으로 성폭력 피해자/주변인/실무자가 빠르게 보고 활용할 수 있는 대처 알고리즘 시각화 작업 →. BIYN 내부 뿐 아니라 외부 조직, 개인도 참고 및 활용할 수 있도록
    • 결과물보다는 과정 및 레퍼런스를 공유하는 방식으로 확장의 방향성을 생각하고 있음.

어떤 내용으로 이루어져 있나요?

주연: 지금부터 저와 시나씨가 각각 약속문과 사건처리 규정의 일부를 보여드리면서 어떤 생각과 과정을 거쳤는지 설명하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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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약속문

1. BIYN은 조건 없는 보편적인 기본소득이 모든 동료 시민에게 삶에 대한 자기결정권을 보장하는 개념이라고 생각한다

주연: 약속문이 시작되는 1번의 경우, BIYN이라는 단체의 가치와 가장 직접적으로 연결됩니다. 개인-단체로서 BIYN이 성평등을 지지하는 기반을 설명하는 내용이라고 생각합니다. 기본소득이 가지고 있는 개인에 대한 신뢰, 보편이라는 민주적인 가치 등을 연결해 볼 수 있습니다.

6. BIYN의 활동 과정에서 위와 같은 발언을 들었을 때 누구나 경고하고 제지하여 혐오 발언의 발화자에게 즉시 인지시킬 수 있다.

두 번째는 6번 약속문입니다. 어떤 모임에 갔는데 누가 성차별적인 말을 했고, 그걸 그자리에서 바로 지적하지 못해서 집에 돌아와서 괴롭고 답답했던 경험이 많았어요. 이 문장은 언뜻 보면 당연한 얘기 같지만, 어떤 사람이 불쾌한 발언/행동을 해도 막상 그 자리에서 바로 제지시키기는 누구도 쉽지 않습니다. 이런 내용을 문장으로 쓰고 읽었을 때, 덕분에 용기내어 그 자리에서 문제제기를 할 수 있는 경험을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조직 내 성폭력 사건이 일어나기 전에 성평등 규약과 페미니즘 약속문, 이를 위한 장치들을 만든다는 것이 정말 다행이라고 느끼는 동시에, 만드는 과정에서 여러가지 최악의 상황을 가정해야 하기 때문에 심적으로 꽤 힘이 듭니다. 내가 일원인 이 단체에서 일어날 성폭력 사건을 상상하는 것은 그것만으로도 엄청난 스트레스가 됩니다. 그런 상황 중 가장 자주 일어나기 때문에 구체적으로 생각했던 상황이 바로 위 내용이었습니다.

7. BIYN은 성평등을 침해하는 사건이 일어나는 경우 성평등팀의 전담 하에 공동의 문제로 대처한다.

조직 내에 성폭력 사건이 일어났을 때 조직 내에서 실무적인 일처리는 누가 해야 하는 지, 그 범위는 어디까지인지 실무팀에게 명확히한다는 부분에서 중요합니다. 책임의 범위는 조직의 구성원들 모두가 져야한다는 부분도 빼먹어서는 안되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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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BIYN의 운영위원회와 프로젝트팀(활동 단위 모두)은 행사 조직 및 프로젝트 기획 시 최대한 다양한 구성원의 자리를 보장 해야 한다.

이  부분은 프로젝트 초반에는 생각치 못한 부분이었는데, 시나씨가 어떤 범위까지 고려하고 포함하면 좋을지를 짚어주신 덕분에 포함될 수 있었습니다.

이 항목이 들어가게 되면서 단순히 ‘사건’을 둘러싼 내용, ‘제지’와 ‘금지’로서가 아닌 다양한 레벨에서 성평등을 고려할 수 있게 된 것 같아 만족스럽습니다.

9. BIYN은 성평등한 문화를 위해 지속적으로 대화하고 학습해나간다.

9번도 아주 당연해 보이는 문장인데요. 사실 이 항목에는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끝없이 자문한 ‘효용이 있을까?’, ‘우리 회원들이 이걸 보며 얼마나 공감하고 지켜나갈 수 있을까?’ 같은 고민이 담겨있어요.

우리가 약속문과 사건처리규정을 만든다해서 성평등을 침해하는 사건이 절대 일어나지 않는다는 보장은 없습니다. 때문에, 약속문에 이 말을 넣음으로써 조직 내에서 다함께 책임을 가지고 이런 대화와 학습을 해야한다는 것, 우리 모두에게 책임이 있다는 것을 명확하게 상기하고 싶었습니다.

10. BIYN에서 진행하는 행사나 모임이 시작될 때 다 함께 이 약속문을 숙지한다.

약속문이지만 하나의 장치 역할을 하는 마지막 항목입니다. 프로젝트 팀 단위로 진행되는 상황에서 언제나 성평등 팀이나 운영위원이 상시적으로 상황을 알고 있을 수 없으니 이런 장치를 마련하게 된 거죠. 앞으로 일어날 조직개편에 기반해 실제 활동, 모임 등이 어떻게 굴러갈 지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한 항목이라고 할 수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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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성폭력 사건처리규정

시나: 저는 사건처리규정의 내용 중 몇가지 공유하고 싶은 부분을 나누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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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적용범위에 관한 부분입니다.

‘활동과 연관되어 발생하거나, 당사자의 향후 활동에 영향을 미치는 사건에 개입함을 원칙으로 한다.’

워크샵을 통해서 사건처리규정을 만들고 적용함에 있어 가장 우선이 되는 원칙으로 ‘피해자가 이 조직안에서 안전하게 활동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을 정하게 되었어요. 그걸 자연스럽게 반영한 결과입니다.

또한 개입의 범위를, ‘조직의 회칙상의 회원만이 아니더라도 활동과 연관된다면’으로 확장하였습니다.

사건처리 기구: 성평등팀과 대책위원회

그 다음에는 성평등팀과 사건대책위원회로 이루어진 사건처리 기구입니다. 저희가 참고한 자료가 대학내 사건처리규정이라 그것이 반영되기도 하였고요. 지원 및 상담 업무과 조사 및 판단 업무가 독립적으로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여기서 상담이라는 건 문제해결을 위해 어떤 것을 할 수 있는지, 단계와 과정을 같이 그려보는 건데요. 두 업무를 분리해서 잘 해내야 구성원들이 모든 절차와 결정에 대해 신뢰할 수 있고 더 나은 사건해결이 가능할 것 같습니다.

대책위원회에는 외부인이 반드시 포함되어야하고, 활동회원이 포함되어야 한다는 규정을 마련했어요. 사건해결과 성평등 마련이 성평등팀만 해서 되는 게 아니고, 조직의 참여 없이는 이룰 수 없는 목표이기 때문에 활동회원을 포함하게 되었습니다.

온라인 공간에서의 성폭력, 피해자의 주거, 활동공간(온/오프라인) 등의 적법한 점유공간으로부터 퇴거, 격리 등 공간분리조치

다음은 온라인 공간에 관한 내용입니다. 사건해결시 피해자와 가해자의 공간분리 조치를 할 수 있는데요. 여기서 물리적 공간 뿐 아니라 온라인 공간을 고려하게 됐습니다. BIYN의 활동 특성상 온라인 활동이 많기 때문에 그런 조직의 특성이 반영되었고요. 온라인 폭력에 대한 내용 추후 지속적으로 보충해 나갈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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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IYN은 피해자의 피해회복을 위한 비용을 50만원까지 지원한다.’

피해 회복을 위한 비용을 50만원까지 지원한다는 내용이 있어요. 이것으로 피해자 회복이 모두 이루어진다고 하는 게 아니라 단체가 사건에 개입하는 하나의 방식을 고려해본 것입니다.

어느 정도의 금액이 적정할까 고민하다 심리상담 비용에 맞춰 지원하면 어떨까 생각했고, 저희 단체의 재정규모를 고려하여 시작은 50만원으로 하자고 했습니다. 의료, 법률, 주거 등과 관련해서는 기존의 피해자 지원제도를 잘 이용할 수 있도록 타 단체나 기관에 연계하려고 합니다.

가해자 징계 조치 (1. 제명 2. 활동중지 3.가해자 교육 4.성평등 교육 프로그램 이수 5. 사과문 작성)

가해자 징계 조치는 ‘제명, 활동중지, 가해자교육, 성평등 교육프로그램 이수, 사과문 작성’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보통 학교나 회사 같은 경우에는 가해자가 징계안을 이행하지 않으면 처벌을 내릴 수 있고 가해자가 그걸 무시하기 어렵지만, 우리 단체 같은 경우는 가해자가 징계안을 무시하고 단체를 나가기가 쉬운 것 같아요 그런 경우 우리가 어떤 권한을 가지고 가해자가 징계 조치를 이수하고 책임을 지게 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있었습니다.

따라서 바로 활동중지나 제명이 아닌, 가해자가 책임을 다하는 방식으로 사과하게 하고 당신의 행위가 왜 가해 행위인가에 대해 설득하는 것까지 우리의 업무로 포괄하는 것으로 정했습니다. 이런 업무가 실무자의 짐으로 남지 않으려면, 구성원 누구나가 ‘나 역시 가해자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하고, 내 행위에 책임을 질 수 있는 역량을 길러야 합니다. 이런 고민의 흐름에서 체크리스트와 같은 일상적인 장치를 통해 평소에도 성평등을 자주 말하고 체화하는 활동을 해가자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결국 ‘예방’에 대한 이야기로 논의가 순환된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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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전소영)

주연: 저도 첨언을 조금 하자면, 이건 처음에는 생각지 못한 부분이었어요. 보통 사건이 일어나면 대부분의 조직들이 가해자를 일단 ‘없애’ 버리잖아요. 조직에서 일단 잘려나가 버리는 식으로 해결하는걸 자주 보게 되는 거죠. ‘그런데 그게 진짜로 문제 해결일까?’ 라는 질문이 새로웠고, 유의미했어요. 그런 식으로 해결한다면 가해를 저지른 사람은 사실상 아무런 책임을 지지 않게 되거든요. 그래서 정말로 우리가 원하는 문제해결을 위해서는 실무 과정에 단순히 가해자를 조직에서 배제해버리는 게 아닌, 설득하고 교육하는 과정이 필요할 수 있겠다는 걸 새롭게 깨달았어요.

시나: 마지막으로 부록 부분입니다. 레퍼런스를 찾다가 <성폭력 생존자 권리 헌장>이란 것을 발견했어요. 98년도에 한국여성연합에서 만든 것인데, 피해자가 사건 이후에 받아야 하는 대우나 조치를 보호가 아니라 권리라는 이름으로 규정하는 것이 좋았습니다. 피해당사자 뿐 아니라 이 규약을 가지고 나중에 해결을 해야 할 관계자도 참고해야 한다는 생각에 부록으로 추가했습니다.

주연: 다음은 아직 만들어 나가고 있는 장치들을 소개합니다. 앞서 이야기한 약속문에 기반한 사전체크리스트와 회고용 체크리스트를 만들었어요. 어떤 프로젝트가 끝나고 회고를 할때 해당 팀의 성과에 성평등, 평등문화와 관련한 역량도 고려하게 되는 거죠.

우리가 함께 일하는 과정에서 외모에 관한 농담을 했는지, 나이가 어린 사람에게 일방적으로 반말을 하지는 않았는지, 분위기를 해치고 싶지 않아 침묵하지 않았는지 등에 대해 타인이든 나 스스로에 대해서든 체크할 수 있도록 하고 그것을 성평등팀에게 접수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향후에는 이런 장치들을 만들면서 접하게 된 많은 레퍼런스, 그리고 오늘 이야기한 과정에서 얻은 것들을 공유하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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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결과물로 공유드린 약속문과 처리 규정은 저희 조직이 처음 만든 새로운 것이 아니에요. 찾아보시면 이미 다른 조직들에서 오랫동안 고민한 좋은 자료들을 찾아보실 수 있을 거에요. 하지만 그런 자료들을 찾아볼 시간과 여유가 부족한 경우도 있을 것 같아요. 저희도 이 프로젝트를 하면서 찾아보게 된 것이기도 하구요.

그래서 자료공유의 방식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게 됩니다. 비슷한 자료가 필요한 다른 조직, 개인들이 쉽게 이런 정보들을 볼 수 있게 하고자 정보를 간추려 시각화하는 작업, 웹을 통한 발행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특히 성폭력 사건들에는 복잡한 요인들이 얽혀 있기 때문에 이를 처리하는 과정에서 피해자를 보호하고 적절한 조치를 취하는 것이 무엇인지 파악하기가 쉽지 않잖아요. 따라서 이런 경우 다양한 위치에 있는 사람들이 빠르게 참고할 수 있는 참조자료, 도움자료를 만들어보고 싶습니다.

그 외에도 워크샵 템플릿이나 세부 과정을 정리해서 공유하는 것도 생각하고 있고요. 성평등팀을 운영하고 계속 장치도 만들어 가면서 계속 수정/보완하는 실험을 해나갈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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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전소영)

어려웠던 점과 기억에 남는 순간

주연: 마지막으로 저희가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가장 어려웠던 점, 기억에 남는 순간에 대해 공유해보려고 합니다.

시나: 저에게 제일 어려웠던 부분은 일단 ‘어떤 사건이 발생할 수 있는가’에 대해 생각해보는 것이었는데요. BIYN처럼 회원 간 만남이나 접점이 많지 않은 단체에서 어떤 사건이 있을 수 있을까, 피해자가 어떤 일로, 어떤 욕구를 가지고 이 단체에 도움을 요청할까 잘 상상이 되지 않았습니다. 단체에 사례가 없었기 때문에 좀 더 어려웠던 것 같아요.

비슷한 이유로 느슨한 조직에서 할 수 있는 가해자 처벌에 대해서도 고민이 많았는데요. 운영위와 주연씨가 가해자 처벌이 사건해결의 끝이 아니라, 그것 외에도 조직 내에서 할 수 있는게 많다고 이야기 해주셔서 스스로 의문이 해소될 수 있었습니다. 처벌이 해결의 전부가 아니라는 걸 다시 생각해 볼 수 있었던 순간이에요.

기억에 남는 순간으로는 저희가 초안을 가지고 운영위랑 얘기할때 성평등팀이라는 상시 운영팀을 만들게 된 것입니다. 지금까지 BIYN에서 만들어지고 운영된 팀들과는 다른 방식의 팀을 만드는 일, 예산을 책정하는 일이 되게 빠르고 쉽게 이루어졌거든요. 그게 아주 자연스럽게 이루어졌다는 게 인상적이었습니다. 조직개편이 동시에 진행되고 있었기에 더 빠르게 적용될 수 있었다고 피드백 주시긴 했지만, 그런 조치는 여전히 조직에 부담스러운 일일 수 있거든요.

그 외에도 워크숍을 할 때 피해자가 안전하게 활동할 수 있어야 한다는 원칙을 세워본 것, 성평등은 확산, 공유되어야할 사회 자원이라고 정의해본 순간도 기억에 남습니다.

주연: 가장 처음에 고민했던 건, 과연 이 조직에서 어디부터 어디까지 책임질 수 있는가 였어요. 당연히 최대한 지원하면 좋겠지만, 우리 단체가 가지고 있는 자원과 역량을 잘 파악해서 결정해야 한다는 생각을 했어요. 어쨌든 우리가 조직적으로 또 실무적으로 어디까지 책임질 지 대략 정해놓고 시작하는 게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성평등 장치를 만드는 과정이 곧 조직의 역량을 파악하게 되는 시간이 될 수 밖에 없었던 것 같아요. 주온이 그런 부분을 초반에 많이 짚어주었고요.

과정 중에는 사실, ‘역량 없음’이라는 말을 가장 많이 떠올렸던 것 같아요(웃음). 회의 때는 제가 이상한 말, 잘못된 제안만 하는 것 같았고요. 내겐 아직 이런 문제를 감당할 역량이 없다는 것을 인정하는 수 밖에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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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전소영)

역량 없음을 인정한 그 순간이 꽤 중요했던 것 같아요. 책도 꽤 읽었고, 페미니스트로서 감수성이 떨어진다고 생각치 않았는데 막상 이런 메뉴얼을 만드니 모든 게 어려워서 당황스러웠어요. 너무 손쉬운 일로 생각하고 내 역량을 넘어서는 일을 벌인 것 같아 좌절감이 들었고요. 믿을 수 있는 동료인 시나씨와 BIYN 운영위가 있어서 이어갈 수 있었지만요.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나의 개인적인 사건들이나 주변의 경험, 그리고 이 규약이 존재하게 될 사회적 분위기 등으로 인해 무력감을 꽤 자주 느끼기도 했어요. ‘이게 과연 정말 도움이 될까?’, ‘문제를 둘러싸고 책임있게 행동해야 하는 방법이란 뭘까?’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정말 많이 던지게 되었어요. 물론 위 질문에 대한 답은 쉽게 나오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실은 이 일을 하자고, 하겠다고 한 이유가 사건사고 속에서 그만 무력해지고 싶었기 때문이었던 걸 상기하며 끝까지 할 수 있었습니다. 내가 믿고 손에 쥘 수 있는 조직 내 성평등/성폭력 매뉴얼이라는 게 너무 필요했던 여성 개인이기도 했고요. 저 같은 여성 개인들이 많이 있겠지 하면서.

덕분에 성폭력 사건에서 피해/가해당사자일 때, 주변인일 때, 주변인은 아닌 조직의 일원일 때, 가해자의 주변인일 때, 피해/가해 당사자 모두의 주변인일 때, 내가 그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실무담당자일 때 어떤 행위를 옳다고 할 수 있는 지에 대해 처음으로 고민해볼 수 있었습니다. 이런 것들을 한 번도 배운 적이 없었다는 사실을 깨달았고요.

우리는 피해자로서, 가해자로서 문제해결을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 지 뿐만 아니라, 그 외의 이해관계자일 때 성폭력 문제에 어떻게 다가가야 하고, 어떤 과정으로 해결해야 하는 지에 대해서는 더욱 모릅니다. 그래서 이런 역량없음을 개인적인 문제나 좌절감으로 축소시키기보다는 우리 모두의 역량없음으로 확장해야 하는 문제겠구나, 그렇기 때문에 이 과정을 더 많은 사람들과 나눠야 겠구나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피해자/가해자의 구도를 벗어난 이해관계자의 자리에 스스로를 위치시키고 어떤 게 ‘책임’인지, ‘옳은’ 대처인지를 따져볼 수 있는 관한 최소한의 기준, 그 기준을 도출해 낼 질문을 구성해볼 수 있는 학습의 순간들을 계속 이어나가야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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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전소영)

정답을 다 알면서 만들 수는 없는 것이라는 사실이 다행스럽고 또 그 불완전함이 걱정스러웠지만 함께 만드는 동료들, 그리고 그들과의 대화 속에서 가능했습니다. 제가 되게 괴로워 할 때 시나씨가 레퍼런스로 전해주셨던 <실무자들을 위한 나침반>에서 ‘문제 해결의 태도’를 보며 와닿는 부분이 있었는데, 그때 무릎을 치면서 아 뭔가 조금이라도 알게됐구나를 느낀 순간이었어요.

-BIYN 성폭력 TF는 피해자의 구체적인 요청이나 필요가 확인되지 않은 상황에서 바로 ‘공론화’나 ‘공식적 해결’만을 올바른 해결로 생각하지 않는다.

-BIYN 성폭력 TF는 ‘조직 내 문제’로 축소 이해하여 가해자에 대한 제명이나 탈퇴조치로 바로 해결하는 태도를 지양하며, 조직 내 조치와 사법적인 조치가 함께 이행될 수 있도록 노력한다.

가 그 내용입니다. ‘공론화’나 ‘공식적 해결’이라는 말이 실은 사건의 해결이나 피해자의 회복을 담지하지 못한다는 한계를 인지하고, 어떤 것이 올바른 해결인지 함께 고민해 나가야 한다는 의미를 담을 수 있어 기뻤습니다. 그 전에는 쉽게 정의감에 사로잡혀 무조건 공론화 하는 것으로 결론을 이어나가다가 또 이건 아닌데?! 하는 생각만 하고 더 생각해보지 못했던 부분들이었습니다. 문서 구성이 바뀌며 장치 문서에 실리지는 않지만, 내 마음과 조직이 추구할만한 내용을 만들었다는 생각이 들었던 첫 순간이었습니다.

시나: 주연씨가 어떤 무력감이 해소되는 것 같았다는 얘기 동감해요.  저는 강남역 사건에 영향을 많이 받은 페미니스트인데 그 이후 사회를 보며 켜켜이 무력감이 쌓였습니다. 어렵고 고통스러운 일이지만 오히려 문제에 대응하는 입장에 설 때 무력감이 덜해지는 것 같아요. 주연씨가 그런 느낌 공유했을 때 공감할 수 있었고 그때도 기억에 많이 남아요.

주연: 프로젝트를 마무리 하며 조직을 다시 생각해보게 되었다고도 하셨었죠?

시나: 이렇게 긴시간 BIYN에 대해 구체적으로 고민해본적 없었기 때문에, 구성원으로서 나의 역할은 이런 일을 해나가는 것에 있겠구나 생각했고요. 위계적이지 않고 자발적으로 활동하고자 하는 개인들이 모여있는 곳이라는 점에서 앞으로가 기대가 됩니다. 성폭력 없는 조직을 위해서는 위계적이지 않은 조직문화는 중요한 것 같아요.

사람들이 접하는 성폭력 사건들은 잘 해결이 안 된 사건들이고, 두려움이 한켠에 생기는 것 같아요. 완벽하게 잘 해결되는 갈등이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해요. 그런데 우리는 사건에 대해 해결하는 것보다 하지 않는 것이 더 익숙한 것 같습니다. 갈등을 같이 꺼내고 해결하는 걸 계속 해봐야 되는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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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전소영)

주연: 프로젝트 기간이 길어지는 동안 한샘 사내 성추행 사건, 서지현 검사의 고발, 미투 운동으로 인해 계속해서 많은 사건들이 터졌습니다. 전에는 이런 사건이 있을 때마다 쉽게 불안이 엄습했어요. 어느 순간이 되자 앞으로도 크고작은 사건사고는 계속 있겠구나 싶었고, 이젠 그럴 때마다 그만 무력해져야겠다 싶었어요. 그리고, 이런 사건들 가운데서 나는 내 몫과 내 방식으로 어떤 방식으로든 책임을 지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이건 조직을 통해서 할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떠오르는 문장을 sns에 쓰거나 친구들에게 말하는 것과 달리, 막상 실제 성평등이 침해되는 상황은 다양한 요소와 입장이 얽히는 일이고, 하나의 정답도 없습니다. 그 복잡성 속에서 개인과 단체가 ‘책임있는 행동’을 한다는 것은 당연히 매우 어려운 목표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같이 만들고, 고민하고, 이야기 하지 않을 수 없는 일이기도 합니다. 그런 과정을 통해 개인과 조직이 함께 성평등/페미니즘 감수성을 기르고 성장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성장이 조직 내에서 당연해지면, 더 많은 여성들이 자신에게 흥미진진하고 재밌는 일들, 옳다고 여기고 가치있다 생각하는 활동들을 더욱 자유롭게 할 수 있을 거에요.

제가 다른 조직이나 단체 생활을 할 때 항상 어렵고 어색했는데, BIYN이라는 단체에서는 비교적 편안함을 느끼며 회원으로서든 운영위로서든 활동할 수 있었던 건 바로 이런 걸 만들 수 있는 곳이었기 때문은 아닐까, 그런 생각을 다시 해볼 수 있었어요. 당장 눈에 보이는 물질적인 자원이나 역량은 아니지만 조직 내에 페미니스트들이 있다는 게 바로 이런 일을 가능하게 하는 기동력이고요. 이 프로젝트의 마지막 즈음에야 조직 내에 페미니스트들이 있다는 게 큰 역량과 자원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한편으로는 저는 정말로 개인적인 차원에서 좀 더 몰입했던 것 같기도 한데, 무엇보다 제가 저로서, 저의 정체성인 페미니스트로서, 그리고 개발자로서 두가지 정체성을 모두 녹이며 꼭 하고 싶었던 활동들을 이 조직에서 유일하게/처음으로 시작할 수 있었습니다. 연결해서, 앞으로도 지금 시작된 이 version 1의 문서를 바탕으로 웹에 다양한 내용을 퍼블리싱 해서 더 많은 분들께 접근성을 높이는 성평등 장치로 만드는 작업을 이어가고 싶습니다.

마지막으로, 이 발표를 준비하며 아주 마지막에 문득 기억이 나 찾아본 000 선생님이 보내주신 메일 내용을 공유해보려 합니다.

‘… 가장 중요한 것은 지지자의 욕망이 아니라 당사자 피해자가 얼만큼, 어느 정도로 감당해내고 추구하고 싶은지에 대한 정확한 이해라고 생각한다. 물론 피해자인 사람의 마음과 판단은 일관적이지 않기 때문에 ‘정의’ 개념이 어떻게 구성되고 어떻게 실천되야 하는지가 그렇게 자명하지않아.

가해자 또한 가해 행위로 인한 성찰, 자책, 무지, 뻔뻔스러움의 정도를 우리가 판단할 수 없기 때문에 고정된 시점에 머물러있다고 생각할 수 없단다. 때론 주변 지지자들의 정의감의 발현이 정확한 사실을 인지하지 못한 채 ‘공적 투쟁’ 자체의 ‘속도’와 ‘열광’으로  바로 현재의 상황과는 상관없이 자체 동력을 갖게 된단다. 참 쉬운 일이 없단다.

항상 너가 피해를 당했을 때, 당했다면 어떤 도움이 정말 힘이 되었는지 곰곰이 생각해보면서 폭발적 사건으로서의 정의감의 발현이 아니라 다층적 차원의 문제제기와 협력의 네트워크를 구성해보면 좋겠다. 이 과정에서 주변사람들의 인식을 변화시키는 것 또한 성정치라고 생각한다.

너는 잘 해낼 것 같구나.’

피해당사자든 가해당사자든 고정된 존재가 아니기 때문에 우리가 무엇을, 어떻게 책임질 지 정하는 게 항상 어렵다는 이야기에요.

이 메일을 받았을 땐 사실 잘 이해가 안됐어요. 가해자는 그냥 나쁘고 용서할 수 없고, 밉고.. (웃음) 또, ‘폭발적 사건으로서의 정의감 발현이 아니라 다층적 차원의 문제제기와 협력 네트워크를 구성해보는 게 좋겠다’고 하시는데 도대체가 너무 어렵고 하나도 이해가 안갔어요(웃음). 활동 마지막에 돌아보니 제가 이 프로젝트를 하게 된 아주 기저에 바로 저걸 해보고 싶다는 마음이 있었던 것 같더라구요. 그 전에는 ‘정의감’을 발현하고 부당한 상황에 화를 내면서 — 물론 지금도 그러긴 하지만(웃음) — 가해자를 폭로하고 처단하는 상상력에서 그치곤 했습니다. 그것은 문제를 해결하지도 못했고 제게 슬픔을 더 자주 줬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활동 마지막에 메일이 생각나면서 제가 이걸 해낸 것 같은 거예요. 오밤중에 이걸 발견하고 흥분해서 시나씨에게 의미를 폭발시키며(웃음) 공유했던 생각이 나네요. ‘폭발적 사건으로서의 정의감의 발현이 아니라 다층적 차원의 문제제기와 협력의 네트워크를 구성’할 수 있도록 동료가 되어 준 시나씨, 그 자리가 되어준 BIYN에 고마운 마음을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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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전소영)

이제 저희가 같이 만든 약속문을 낭송하면서 이번 프로그램을 마무리 하겠습니다.

약속문 낭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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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중 질문

질문1: 제가 속한 곳이나 지인이 속한 곳에서 이런 고민을 많이 하고 있는데, 규약을 만들 엄두를 못내고 있거든요. 이런 과정을 다시 겪을 조직원들에게 조언을 해주세요.

시나: 구성원들이랑 같이 만드는 작업을 해보시면 좋겠고, 어떤 사안에서 그동안 불편함이 있었는지, 우리 조직내에서 어떤 것들이 더 필요하겠다는 것을 이야기하고 그것을 반영하는 형태로써 규칙을 만들면 어떨까 생각이 들어요. 누군가가 만들어서 공유하는 것보다 자신이 경험한 것을 반영하며 규약을 만드는 과정이 참여했을 때 더 이해가 높고, 필요성을 느끼고 지켜야겠다는 생각이 들 수 밖에 없는 것 같아요.

주연: 처음에 워크샵을 한다고 했을 때 무엇을 해야 할 지, 왜 해야 하는 것인지 생각했는데, 워크샵에서 확인한 것은 다들 사법적인 처리가 깔끔하게 되는 걸 이상적으로 생각했던 거예요. 수없이 잘못된 사례를 봐왔기 때문에 조직 내에서 해결한다는 것도 무서운 거예요. 내가 했다가 잘못되면 어떡하지, 전문가에게 맡겨야 한다, 제 3자에게 맡겨야 한다는 얘기가 많았어요.

나중에 정리를 하며 우리 회원들이 그런 두려움, 책임에 대한 무거움을 가지고 있구나 하고 생각하게 됐어요. 우리 조직에 있는 사람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무슨 처리를 바라고 있는지 하는 욕구를 확인하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질문2: 조직에서 사건의 후속작업으로 염두에 두고 계신 것이 있으신지 궁금합니다.

시나: 사건에 따라 단체에 어떤 문제가 있었는지 드러날 것 같아요. 예를 들어 성소수자에 대한 인식이 부족했다든지, 연령에 따른 차별이 있었다든지 등이요. 그에 따라 다루는 내용이 달라질 거 같고, 조직문화를 바꾸기 위해 전문가를 초청해서 강의를 열 수도 있고 워크샵을 진행해볼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질문3: 추후에 좀 더 구체화 시키고 명문화 시키고 싶은 부분이 있으신지 궁금합니다. 여기서 커버되지 않는 것들이 있는 것 같습니다. 예를 들면 사건 이후 우리가 가해자의 친구로서 어떻게 대처해야 할 지 등에 대한 내용 말이죠. 이런 부분에 대한 매뉴얼을 마련할 생각이 있으신지 궁금합니다.

주연: 온라인 상에서 일어나는 상황에 대해 좀 더 대응책을 마련해야 할 것 같습니다.

희원: 기청넷은 특히 온라인으로도 총회가 이루어지기도 하고, 온라인에서는 신체적 접촉이 일어날 수 없는데 그런 상황에서 일어날 수 있는 게 어떤 것인지 고민이 있었습니다. 예를 들어 누군가가 뒷담화방을 만들어서 소문을 유포한다면? 또 약속문을 활동 모임 때마다 읽는다는 규정이 과연 지켜질 수 있을까? 사실 말씀하신 것처럼 사건 이후의 곤란한 상황에서의 매뉴얼은 아직 마련하지 못했는데 이런 피드백을 받으며 수정해나가려고 합니다. 지속적인 작업이 필요성을 느꼈기  때문에 상시적인 성평등 팀을 규약 구성 과정에서 만들게 되기도 했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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