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ston People] 생활동반자법팀 두 번째 모임 후기

 

참여자: 신아, 여경, 장미, 희원

작성자: 여경

너무 당연한 이야기이지만 BIYN의 생활동반자법팀은 지금 당장 내 삶에 생활동반자법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모여 만들어졌다. 이미 친구와 함께 공동생활을 하고 있는 이들이 지금의 생활 형태가 하나의 유효한 가족구성단위로 인정되고, 그에 따른 법적 권리와 정책적 혜택을 누리고 싶다는 의지로 모이게 된 것이다.

‘생활동반자법을 입안하자’는 거창한 목표를 세웠지만 거기까지 어떤 활동을 하며 나아갈지 처음엔 막막했다. 그러나 가벼운 식사 자리로 만난 첫 모임에서 ‘같이 사는 일’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면서, 여성들끼리의 공동생활 경험을 갖고 있는 이들이 모여 대화를 나누는 것 자체가 유의미하다는 느낌을 모두가 받았던 것 같다. 우리는 다음 모임까지 각자의 공동생활 경험을 돌아보는 시간을 갖고 다시 만나기로 했다. 네 명의 팀원이 각각 둘씩 공동생활을 하고 있는 터라 두 집에 번갈아 방문하여 모임을 진행하면 어떻겠냐고 희원 씨가 제안했고, 그렇게 해서 희원 씨와 장미 씨가 살고 있는 집에서 두 번째 모임을 가졌다. 선선한 여름 저녁이었고, 조용한 골목을 따라 찾아간 곳은 베란다 창밖으로 큰 나무가 있는 집이었다. 우리는 간단히 안부를 나누고서 희원 씨의 방에 둘러 앉아 이야기를 시작했다.

여성-친구와 함께 사는 생활 돌아보기

먼저 지금의 여성들끼리의 동거 생활이 어떠한지, 좋은 점은 무엇이고 나쁜 점은 무엇인지 돌아보는 시간을 가졌다. 각자 떠오르는 대로 쓴 것을 모아보았더니 다른 사람과 함께 살면 그게 누구이건 자연히 발생하는 불편(화장실이 하나인 것, 가끔 혼자 있고 싶은 것 등)을 제외하면 모두 좋은 점들이었다.

월세와 생활비를 나눠내면서 경제적 부담이 줄어드는 점, 수리 기사를 집에 불러야 하거나 택배를 수령할 때 느끼게 되는 긴장과 불안이 혼자 살 때보다 줄어든다는 점, 음식을 서로 챙겨주는 것, 집안일을 나눠서 하게 되는 점 등 생활 측면에서의 장점들이 있었다. 그리고 퇴근 후 집에 돌아왔을 때 수다를 떨 수 있는 사람이 있는 것, 쇼핑 등 간단한 일을 함께할 사람이 있다는 점 등 감정적인 유대와 교류도 장점으로 꼽았다.

이런 장점들이 여성-친구가 아닌 사람과의 동거에서도 가능할까? 우리는 연애상대와의 결혼이나 동거, 원가족과의 생활, 아예 모르는 사람과의 하우스쉐어의 경우를 각각 상상해보았다. 그러나 곧 생활적 측면에서의 이익은 가능하겠지만 감정적인 유대에 해당되는 부분은 여성-친구들과의 공동생활에서 가능한 것 같다는 데에 의견을 모았다.

특히나 원가족들과의 생활은 적절한 거리감 유지가 힘들거나 소통이 잘 안 되는 지점들이 많다는 이야기들이 나왔다. 나 또한 원가족과는 내가 삶에 있어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나 삶의 계획, 감정들을 공유하는 데 있어 어려움을 많이 느낀다. 세대 차이도 있겠고, 자아를 형성하는 과정을 부모형제와 긴밀히 공유해 본 경험도 없고, 무엇보다 자식이 ‘잘’ 살기를 바라는 부모의 기대에 부담감을 느끼기 때문인 것 같다. 그런 반면 친구들과는 비슷한 가치관을 갖고 있어 심정적 지지를 주고받을 수 있고, 내 삶에 대해 불필요한 의심을 거두고 나 자신에게 집중할 수 있는 자율적인 환경이 조성된다. 또한 동시대를 살아가는 여성으로서 지고 있는 부담감 등 설명할 필요 없이 공유되는 지점이 있어 가족보다 훨씬 편안하다는 의견도 있었다.

그리고 연애상대와의 동거나 결혼은 감정적으로 지치는 지점이 많을 것 같은 반면 친구와는 적절한 거리감이 있어 좋다는 이야기도 있었다. 새로운 가구의 구성이 꼭 사랑에 기반할 필요가 없으며, 우정이라는 감정의 기반 위에 공동생활을 꾸리는 것이 나쁘지 않다는 생각에도 모두 다 공감했다.

공동생활을 위해 필요한 정책들

그러나 현재 한국에서는 혈연, 혼인 관계를 통해서만 가족을 구성할 수 있고, 그 외의 가구 형태들은 법적으로 인정되지 않고 있다. 2014년 진선미 의원에 의해 ‘생활동반자 관계에 관한 법률안’이 발의된 적이 있지만 통과되지는 못했다. 우리는 진선미 의원이 발의한 생활동반자법을 살펴보면서 그 취지에는 깊이 공감했지만, 3인 이상 가구에는 동반자 관계가 적용되지 않는 점을 비롯하여 기존의 결혼제도와 너무 유사한 점이 아쉽다고 판단했다.

그러면 우리가 필요로 하는 정책은 어떤 것이 있는지 자유롭게 나열해보았다. 가장 먼저 3인 이상의 생활 동반자 관계에 대한 인정이 언급되었다. 가족이 반드시 두 사람 사이의 파트너쉽으로 구성된다는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더 다양한 형태의 가족구성권을 보장해야 한다는 것이다. 또 이러한 다양한 가족 구성에 알맞게 여러 사람이 살기 좋은 큰 집, 특히 전형적인 부부-자녀로 이루어진 가족만이 아닌 다양한 동거 관계에 맞는 구조의 집이 부동산 시장이나 공공주택사업에 있어 더 공급되어야 한다는 의견이 뒤따랐다. 현재 네 명이서 공동생활을 하고 있는 나는 집을 구하러 다닐 때 방 하나하나가 크기가 비슷한 집을 찾는데 큰 어려움을 겪었었다. 대부분이 부부가 같이 사용할 커다란 안방과 작은 방, 옷방으로 구성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다음으로 주택 공동 임차 및 소유 가능, (신혼부부나 형제자매가 아닌) 2인 이상 친구 모임에도 전세자금 대출 지원, 공동 재산 소유와 상속 가능, 위기 시 보호자가 될 수 있도록 하는 동반관계 인정, 동반자 질병/사망 시 휴일과 휴가 제공 등 법적으로 동반자 관계를 인정받을 수 있는 정책들이 언급되었다.

이야기는 자연스럽게 여성의 경제력과 결정권에 대한 이야기로 이어졌다. 여성이 자신이 원하는 사람과, 자신이 안전하다고 느끼는 곳에서 살 수 있기 위해서는 여성이 남성과 동등한 조건에서 경제활동을 할 수 있고, 동등한 시민으로서 힘을 가져야 한다는 생각에서였다. 이에 따라 동일노동 동일임금, 취업시장에서 여성에 대한 차별 없애기 등이 언급되었다. 또 여성이 자유로운 의지로 가족 구성을 할 수 있는 권리를 위해 낙태죄 폐지가 필요하고, 한부모 가정이나 미혼모에 대한 지원 확대도 더불어 이루어져야 한다는 의견도 나왔다.

생활동반자법은 결국 전통적인 가족 형태와 가부장제 규범에서 개인을 자유롭게 함으로써 개인이 자율적으로 가족을 선택하고 가구를 꾸릴 수 있도록 하는 법안이다. 따라서 이 법이 기존의 결혼제도와 가족규범에서 늘 약자로서 피해를 입던 여성들의 삶 결정권과 이어지는 것은 필연적인 일일 것이다.

생활동반자법이 있는 사회 상상하기

생활동반자법이 생긴다면 어떤 변화가 생겨날까? 서로가 각자 신뢰하는 사람과 자유롭게 모여 살 수 있고, 그게 법적, 사회적으로 인정된다면?

팀원 신아는 “여자들이 정말로 많이 모여서 살 것 같다”고 하면서 “이혼해서 친구들이랑 사는 여성들도 많을 것 같고, 폭력 피해 여성들도 모여서 살 수 있을 것 같다.”고 했다. 현재 한국성폭력상담소에서 일하고 있는 그는 “폭력피해여성들이 상담소에서 운영하는 쉼터를 퇴소한 후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가 과제”라면서 “쉼터에서 만나 서로에 대해 이해하게 되면서 가까워진 분들이 나가서도 같이 살고자 하는 사람도 많다. 하지만 퇴소한 피해자들을 대상으로 한 주거 지원에 신청하려면 여러 자격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모두가 더 많은 여성들이 같이 살게 될 것 같다고 동의하면서 질문은 ‘남자들도 모여서 살게 될까?’로 이어졌다. 그러나 남성들은 결혼하지 않고 친구와 동거하는 형태를 임시적인 상태로 인식할 것 같다는 의견이 나왔다. 결국은 자신이 결혼을 통해 가정을 꾸릴 거라고 믿고, 그래야 한다고 생각할 것 같다는 것이었다. 실제로 가정을 꾸리느냐 아니냐가 남성이 사회생활을 하는데 미치는 영향도 있을 것이다. 예를 들어 회사에서 ‘가장’ 대접을 받는다거나 하는 것 말이다. 미혼 상태여도 ‘결혼하면 그만둘 사람’이라며 취업 시 불이익을 받고, 결혼을 해서 아이가 태어나면 육아와 일을 병행할 수 없어 일을 그만두는 경우가 대부분인 여성과는 사뭇 다른 대우다.

그렇기에 생활동반자법이 생긴다면 여성들이 더 다양한 선택지를 가지고 자신의 삶을 기획할 수 있을 것이라 기대된다. 단지 미혼의 상태가 불안정하다는 이유로 결혼을 하거나 혼자가 되는 것이 두렵다는 이유로, 경제력이 없다는 이유로 이혼하지 못하는 경우가 줄어들지 않을까? 또 이렇게 개인이 전통적인 가족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살아갈 수 있는 선택지가 주어진다면, 기존의 가족 관념 자체도 더 유연하게 조정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사회에 다양한 가족 형태가 존재할수록 고착화된 남편의 역할, 아내의 역할, 엄마의 역할 등도 희미해질 것이고, 가족 내에서의 관계 맺음도 더 자유롭고 다양한 형태로 이루어질 수 있을 것이다. 전통적 형태의 가족이더라도 부부 간 위계나 성역할, 부모-자식 간의 위계 없이 동등한 개인으로서 사랑과 신뢰의 관계를 맺을 수 있는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을 지도 모른다.

내가 원하는 집에서 내가 원하는 사람과 살아갈 권리

집을 가꾸는 것을 좋아하는 비혼/미혼 여성으로서 “시집가서 좋은 가구 사라.”라는 말을 안 들어본 사람은 없을 것이다. 장미 씨도 “결혼 할 때 좋은 것을 사지 왜 지금 집에 돈을 쓰느냐.”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며 집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다. 결혼을 당연한 삶의 수순이라고 생각하는 사회에서 ‘좋은 집’, ‘살고 싶은 집’에 대한 욕망은 늘 ‘결혼 이후’로 뤄지게 마련이다. 게다가 앞에서도 잠시 언급했듯이 한국의 집, 특히 아파트의 경우는 ‘부부-자녀’의 가족을 전제로 하여 획일적인 형태로 설계되고 공급되고 있다.

우리는 결혼 이후로 좋은 것들을 유예하지 않고 지금 바로 마음에 드는 좋은 가구를 사고, 내게 맞는 삶의 환경을 만들며 살면 안 되는 것일까 반문하며 살고 싶은 집에 대한 상상을 늘어놓아보았다. 비슷한 방 크기, 다층집, 변기칸과 샤워칸이 분리된 화장실, 여유공간 등 공동생활에 적합한 구조에 대한 바람도 있었고, 채광이 좋고 통풍이 잘 되는 구조, 정원과 텃밭, 창이 있는 부엌, 큰 탁자를 놓을 수 있는 거실, 비어 있는 방, 요가와 운동이 가능한 공간 등 삶의 질과 관련된 바람들도 있었다. 또 휠체어 출입가능, 재난 시 대피가능, 주차 가능, 내부를 엿볼 수 없음, 방범 시설 등 안전 및 편의와 관련된 것들도 있었다. 이러한 바람들을 꺼내어 놓는 과정은 한편으론 약간의 박탈감도 느껴졌지만 정말 흥분되고 즐거웠다.

생활동반자법을 만든다면서 집에 대한 로망을 늘어놓는 것이 이상하게 보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개인이 공적인 삶에서 제 역량을 바르게 발휘할 수 있도록 물질적, 심리적으로 좋은 것을 누리는 공간으로서의 집을, 내가 건강하게 그리고 안정감을 느끼면서 살 수 있는 집을 우리는 더 상상할 수 있어야 하고 더 요구할 수 있어야 한다. 특히 비혼 1인 가구가 선택할 수 있는 집은 ‘원룸’으로 제한되고, 그 외에는 대부분 ‘결혼한 정상가족’에 맞추어진 집이라는 사실이 다른 삶을 선택하고자 하는 상상력을 한계 짓고 있는 것은 아닐지 돌아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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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원 씨와 장미 씨의 집으로 가는 길에 나와 신아는 작은 꽃다발을 하나 샀었다. 그런데 이미 테이블에는 우리를 맞이 하기 위해서 꺼내 두었다는 수국이 꽂혀 있었다. 희원 씨는 꽃병을 하나 더 꺼내어 우리가 사 들고 간 꽃을 꽂아 수국 옆에 두었다. 우리는 여름의 꽃으로 가득한 테이블에서 자스민차를 마시며 부엌이 넓어서 참 좋네요, 바닥재가 좋네요 따위의 이야기를 하면서 집의 어떤 면이 우리를 위축시키는지 혹은 해방시키는지에 대해 이야기했다. 나는 이야기를 나누면서, 그리고 집을 둘러보면서 누군가를 맞이하며 꽃을 꽂아두고, 창가에 식물을 키우는 삶은 얼마나 소중하고 아름다운지 그런 생각을 했다. 최소한의 기능만을 갖추는 게 아니라 생활하는 사람의 취향과 지향이 묻어날 수 있는 집은 얼마나 중요한지 생각하며 집에 대한, 생활에 대한 내 욕망을 가꾸는 일을 멈추지 않아야 겠다고 다짐했다. 그리고 더 많은 사람들이, 더 많은 여성들이 누구와 살고 싶은지, 어떤 형태의 삶을 꾸리고 싶은지를 제약없이 상상할 수 있었으면, 또 실제로 그렇게 살 수 있었으면 하고 더욱 바라게 되었다. 그런 세상을 조금 더 빨리 우리 앞으로 당겨오는 일을 나의 사랑하는 동거인들과 함께 할 수 있어서 정말 기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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