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기본소득과 페미니즘, 페미니즘과 기본소득

여성의 날을 맞아 책기본소득 말하기 다시 기본소득 말하기’(만일프레스)에 실린 회원 스밀라의 글을 공개합니다. 더 다양한 논의가 궁금하다면 단행본을 참조하세요! (오프라인 판매처 리스) (알라딘 )


잠시 어느 운동회를 떠올려볼까. 기본소득과 페미니즘에 대해 생각할 가끔씩 달리기 출발선에 있는 상상을 한다. 먼저 기본소득에 대해 생각하면, 친구들과 레인 앞에 널널하게 서서 결승선을 바라보는 장면을 떠올린다. 달리는 동안엔 누구의 방해도 없을 것이고, 원하는만큼의 열심으로 달리고 나면 그만일 것이다. 그런데 출발선에 사람이 여성이라고 생각하는 순간 상황이 달라진다. 그의 출발선만 한없이 뒤로 밀려나 있거나 달리는 동안에도 온갖 방해꾼이 달려들고 허들을 뛰어넘는 사태가 발생하는 장면이 펼쳐지고야 만다. 그리고 이런 상상이 때마다 그에게 이런 부당한 일이 생기는지, 어떻게 하면 그가 방해 없이 무탈한 달리기를 있을지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모두에게 자리가 마련되어야 한다는 당연한 전제

알려졌듯이, 기본소득은사회 구성원 모두에게 조건 없이 정기적으로 주어지는 소득이다. 좁게는 조건이 없기 때문에 기존 선별복지의 사각지대를 극복할 있는 대안으로, 넓게는 사회 시스템을 전환시킬 강력한 어젠다로 제안되는 아이디어이기도 하다. 기본소득이 사회를 전환시키는 매개체가 있는 이유는 단순한데, 기존 사회를 구성했던 요소들에 질문을 던지고 균열을 만들며 변화를 시도하기 때문이다. 예컨대 기존의 4 정상 가족 중심의 복지 체계, 일과 노동의 개념, 노동과 소득의 고리, 기본소득을 받을 있는 사회 정상 구성원의 자격 , 당연시 여기거나 더는 질문하지 않았던 문제들에 대해 개인에게 주어지는 조건 없는 기본소득은 되묻는다. 정상가족을 기준 삼은 복지 정책이 과연 합당한지에 대해, 모든 것이 자동화 되는 사회에서 노동과 소득의 관계에 대해, 행정 서류엔 미등록 상태일지라도 분명 사회 안에 존재하는 사람들과 사회가 어떻게 관계 맺을지에 대해서 말이다. 그리고 기본소득이 되묻는 가장 중요한 것은 여성의 자리다. 기본소득이 동등한 개인에게 평등하게 주어진다고 , 지금 여성은 정말로 남성과 동등한 하나의 주체로서 인정받고 있으며 사회는 그들에게 합당한 자리를 마련해주는지, 기본소득은 묻는다

기본소득은 단순히 빈곤 해결을 위해 돈을 주는 아이디어를 넘어, 인간 모두가 동등한 권리를 지니고 태어나고, 누구든지 살아있는 동안 인간으로서의 존엄을 보장받아야 한다는 지평 위에 세워지기에 조건 없이 개인에 대한 당연한 몫으로 주어진다. 그런데 기본소득이 지닌 평등이나 자유 같은 가치가 가져다주는 공평하고도 평화로운 심상을 음미하다보면 레인 앞에 섰을 때처럼 다시 지평에서 절반 넘는 사람들이 끝없이 뒤로 멀어지는 광경이 펼쳐지는 것이다. 그들은 대개 여성이고, ‘이등 시민으로 여겨지는 사람들이다. 물론 이런 말을 하면 누군가는 그들의 개인사나 능력을 탓하거나, 아무도 여성의 뒷목을 잡지 않았다고 말할지도 모르겠다. 염치없게도 말이다.

지난 기본소득이라는 이름을 공약을 내세웠던 몇몇 정치인들이 애용했던 단어중에는생애주기 모델 있는데, 이는 일반적으로 통용되는생애주기서사가 존재한다는 의미이기도 한다. 대학을 졸업하고, 취업을 하고, 결혼을 하고, 집을 마련하고, 아이를 둘쯤 낳아 키우다가, 은퇴해 노후를 보내는, 이제는 실현하기 어려워진 이야기 말이다. 그런데 애초에 이야기에 여성은 어디에 있는가? 현실은 채용시에 여성 합격자 수를 제한하고, 아이를 낳고 복직하는 것은 같은 이야기며, 할머니가 되어서도 자식의 아이들을 돌봐야 하는데 말이다. 사회가 기준 서사라고 제안했던 이야기는 이미 여성의 이야기가 아니었다. 그렇기 때문에 이런 이야기를기본소득 나란히 세워두는 것은 아귀가 맞지 않는다. 여성을 배제한 채로모두에게 조건없이기본소득을 주겠다고 제안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이미 기본소득이 무엇인지 모르는 아닌가. , 여성을 지운 채로 기본소득에 가하는 비판은 얼마나 조악한가. 사회가 노동 없이 소득을 지급하면 모두 무임승차하는 베짱이가 된다며 파르르 떨지만 이미 대다수의 인간은 여성들이 수행하는 무급의 돌봄노동이 제공하는 혜택을 공짜로 누리고 있지 않은가. 동시에 여성과 남성의 동일 노동에 대해 동일한 임금을 제공하지 않는 이러한 상황에서 여성은 남성과 동등한 하나의 시민으로 간주되는가 아니면 절반의 무언가로 여겨지는가?

기본소득이 페미니즘 없이 불완전한 아이디어로 남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기본소득이 사회 구성원 모두에게 권리로서 평등하게 주어져야 한다고 주장하는 와중에도, 남성이 기본값인 사회에서 명백히 뒤에 부당하게 남겨진 사람이 존재한다. 내가 맨처음 기본소득이라는 아이디어를 지지했던 이유는 배제 없이 모두에게 주어지기 때문이었는데, 한국 사회에서 여성으로 살면서 기본소득을 바라봤을 발자국 뒤에 주저 앉혀진 나와 동료 여성들을 발견했다. 여성이라는 이유로 자원에 접근할 동등한 기회를 얻지 못한다면 기본소득이 정책으로 도입된다 하더라도 단순히 현금을 지급하는, 협소한 의미를 지닌 제도로 남게 것이다. 무엇보다도 기본소득이 사회를 전환시킬 있는 가장 이유는, 가구 단위가 아니라 개인에게 기본소득을 지급함으로써 개인으로 여겨지지 못하던 사람들에게 온당한 자리를 마련해준다는 점이다. 가부장 아래 딸에게, 남편 아래 아내에게 간접적으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여성 자신에게 합당한 몫을 돌려준다는 뜻이다. 이런 의미에서 여성의 위치를 간과하고 설계되는 기본소득 정책들은 빵점이고, 모두에게 조건없이 주자는 기본소득 운동은 여성이 당연히 가져야 했던 자리를 되돌려주는 과정이 되지 않을 없다. 기본소득과 페미니즘의 만남은 기존 가부장체제가 결혼 제도와 남성 가장을 중심으로 하는 복지 체계와 남성을 주소득과 연결시키는 고용 체계를 통해 어떻게 여성을 지우개질 해왔는지 짚어낼 있을 것이다.

개인과 사회를 연관 짓는 방법을 발명하기

페미니스트 정치학자 캐롤 페이트먼은 철학자 브라이언 베리의 말을 인용해 기본소득이 단순히 기존 체계에서 더하고 빼는 방식이 아니라개인과 사회를 연관 짓는 다른 방식이라고 말한다. 기본소득이 많은 사람들에게 직관적으로 다가가는 이유는 단순한 아이디어가 우회하는 없이사회가 정기적으로 모두에게 지급하는 소득이 있다면 당신은 어떻게 살고 싶습니까?”라고 곧장 질문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지금 주어진 선택지와 다른 답을 상상할 있다. 나는 종종기본소득을 지지하는 사람은 자신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아는 사람이라는 표현을 쓰는데, 질문을 통해 자신이 구체적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그를 위해서 사회는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지, 새로운 돌봄, 새로운 노동과 , 새로운 ㅇㅇ은 무슨 모양인지 사유할 있게 되기 때문이다. 기본소득에 대한 상상은 보통 자신에게서 시작되고, 내가 원하는 것을 말할 있게 하는 힘과 그것이 주는 자유, 그리고 바탕에서 타인, 사회와 연결되어 연대할 있는 가능성을 가져다 준다. 나는 페미니즘 역시 마찬가지라고 생각하는데 내가 자신으로서 안전하고 행복하고 자유롭기 위해, 그리고 연결선 위에서 연대하고 있는 다른 이들도 그러하길 바라며 끊임 없이 기존 사회의 문법에 균열을 내고 새로움을 제안하는 확장성을 지니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이렇게 보면 앞에서 캐롤 페이트만이 말했던 것처럼, 기본소득과 페미니즘 모두 개인과 사회가 관계를 맺는 방식을 계속해서 역동적으로 발명해낸다.

한국에서 일어나는 기본소득, 페미니즘과 관련한 논의와 실천을 바라보면서 깨닫는 점은 발명엔 고통과 수고가 든다는 점이다. 개인의 능력에만 책임을 돌리거나 모든 관리와 규제를 국가 내맡기는 것을 넘어 중간의 언어를 만드는 것은 끊임없이 우리의 좌표를 확인하는 고단한 작업이다. 계속해서 배제되는 사람이 없는지 살피는 , 타인의 자리를 위해 함께 싸우는 일까지 포함하고 말이다. 나에게 기본소득은 최소한의 품위를 보장해주는 소득이고 품위있는 삶이란 단순히 좋은 물건을 소비하는 삶이 아니라, 적어도 나의인간됨 구성하는 최소한의 조건을 지킬 있는 삶이다. 나의 인간됨 안에는여성인 포함되고, 다른 여성들도 자신만의 품위있는 삶을 누리기를 원한다. 지금 현실에서 이를 단숨에 성취하기 어려워 보일지라도, 가끔은 아득히 멀고 깊은 어둠을 헤엄치는 느껴지더라도, 나는 우리가 계속해서 당연한 것을 요구할 것이라고 믿는다. 원래 삶은 우리의 것이었으니 말이다. 기본소득과 페미니즘의 가치가 당연시 되는 세계까지 나란히 달리며, 주변을 지나 바뀌는 풍경을 놓치지 않으면서, 서로의 허들을 치우고, 때로는 업고 뛰면서까지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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