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나의 기본소득” 프로젝트의 20번째 수령자, 아스트리트 로브라이어의 편지

오는 7월에 한국에서는 제 16차 기본소득지구네트워크 대회가 열립니다.

기본소득청’소’년네트워크는 독일 “나의 기본소득”팀의 운영책임자인 아미라 예히아(Amira jehia)와  <일의 문제: 페미니즘, 맑시즘, 반노동 정치, 그리고 탈노동의 상상(근간)>의 번역자인 제현주 선생님을 초청해 특별 세션을 진행합니다.

2016년 현재, 전세계 각지에서 기본소득 실험에 대한 논의가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핀란드와 네덜란드에서 기본소득 실험을 위한 설계가 이루어지고 있고, 스위스에서는 기본소득법안 발의를 위한 투표가 이루어졌습니다. 또 한국에서는 성남시가 청년배당을 실시해 많은 관심을 받았습니다. 대다수의 기본소득 파일럿 실험은 정부나 지자체 중심으로 이루어지지만, 지금 독일에선 조금 다른 방식의 실험이 진행중입니다.

“나의 기본소득”은 독일에서 진행되고 있는 크라우드 펀딩을 통한 기본소득 실험입니다. 사람들은 다양한 방식으로 크라우드 펀딩에 참여하고, 1만 2천유로(한화 약 1500만원)이 모일 때마다 1명씩 기본소득을 받게 됩니다. 현재까지 4만 5700여명이 참여해 46명이 기본소득을 받았습니다. 또한 네덜란드와 미국이 이미 자국 버전의 “나의 기본소득” 프로젝트를 시작했고, 스위스와 아일랜드에서도 프로젝트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이 많은 사람들이 어떤 마음으로 이 프로젝트에 참여했을까요? 참가자들은 한결같이 “기본소득은  정말 멋진 아이디어예요!”라고 말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연대”의 표현으로 이 프로젝트를 지지한다고 하고, 또 어떤 사람들은 자신이 기본소득을 받고 싶기 때문에 참여했다고 말합니다.

기본소득은 단순한 아이디어입니다.  조건 없이, 정기적으로 지급되는 이 소득은 구체적으로 삶을 상상하게 합니다. 하지만 그 상상이 현실이 된다면 어떨까요?

이 프로젝트를 통해 기본소득을 받게 된 사람들의 편지는 기본소득 수령자들의 삶이 우리의 예상과 크게 다르지 않음을 보여줍니다. 통장 잔고에 대한 스트레스가 줄었고, 따뜻한 식사를 할 수 있게 되었고, 일상에 여유가 생겼다고 합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그 일이 실제로 일어났다는 것이지요.  그 경험을 나누고자, 20번째 기본소득 수령자인 아스트리트 로브라이어의 편지를 옮겨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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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6차 기본소득지구네트워크 특별세션 사전 인터뷰: 아미라 예히아(Amira Jehia, 독일 “나의 기본소득” 프로젝트 운영책임자)

제 16차 기본소득지구네트워크 대회: 특별세션 <Session8. 기본소득을 이해시키는 방법>

  • 7월 7일 목요일 오후 4시 45분~6시 / 서강대학교 다산관 10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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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6차 기본소득지구네트워크 대회가 7월 7일부터 10일, 서강대학교에서 열립니다. “사회적, 생태적 전환과 기본소득”이라는 주제로 열리게 될 이 대회는 아시아에서 최초로 열리는 기본소득 국제대회로, 23개국의 기본소득네트워크가 함께하고 전 세계 기본소득 이론가와 활동가들이 참여할 예정입니다.

이번 대회에서 기본소득청’소’년네트워크는 독일 “나의 기본소득”팀의 운영책임자인 아미라 예히아(Amira Jehia)와 <일의 문제: 페미니즘, 맑시즘, 반노동 정치, 그리고 탈노동의 상상(근간)>의 번역자인 제현주 선생님을 초청해 특별 세션을 진행합니다.

이번 세션에서는 독일에서 진행 중인 이 기본소득 실험이 어떻게 사람들을 매료시켰는지, 그리고 어떻게 하면 사람들에게 기본소득이라는 아이디어를 효과적으로 설득시킬 수 있는지 이야기 나눠볼 예정입니다.

독일의 “나의 기본소득” 프로젝트는 크라우드 펀딩으로 재원을 마련해, 추첨으로 기본소득 수령자를 정하는 흥미로운 기본소득 실험입니다. 현재까지 약 4만 5700여명이 프로젝트에 참여했고, 46명이 기본소득을 받았습니다.
(“나의 기본소득” 프로젝트 홈페이지 https://www.mein-grundeinkommen.de/start)

이번 특별 세션에 앞서, “나의 기본소득”팀의 운영책임자인 아미라 예히아와 짧은 서면 인터뷰를 진행했습니다.

더 자세한 이야기는 7월 7일에 열릴 특별 세션에서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많은 관심과 참여 바랍니다.

 

*제 16자 기본소득지구네트워크 대회 특별세션 사전 인터뷰: 아미라 예히아(Amira Jehia) (독일 “나의 기본소득” 프로젝트 운영책임자)

(본 인터뷰는 서면으로 진행되었습니다.)

 

간단하게 <나의 기본소득> 프로젝트 소개를 부탁드려요.

<나의 기본소득>은 다양한 채널과 방법을 통해서 기금을 조성하고, 복권 추첨의 형태로 기본소득을 지급해요. 2014년 7월에 시작한 이래로 43명의 사람들이 1년 간 매월 1천유로의 기본소득을 받게 되었어요. 우리 팀은 기본소득이 그들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이야기를 들어보고, 그 이야기들을 전세계에 알리고 있습니다. 지금까지는 독일어권 국가에 초점을 맞춰 활동해왔지만 2016년엔 다른 국가들에도 알리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네덜란드와 미국에선 이미 자국 버전으로 <나의 기본소득> 프로젝트를 시작했고, 스위스와 아일랜드에서는 기획 중이에요. <나의 기본소득> 프로젝트의 가장 중요한 점은 기본소득을 실제 삶에 접목하는 것입니다.

이 프로젝트를 시작하게 된 계기가 무엇인가요?

저희가 이 프로젝트를 시작하게 된 건 독일에 사는 사람들이 실제로 기본소득을 어떤 방식으로 경험할지가 궁금했기 때문이에요. 더 나아가서, 우리는 독일을 넘어서 전 세계에 그걸 알리고 싶었고요.

크라우드 펀딩이라는 방식이 좀 무모하게 느껴지기도 해요. 사람들이 얼마나 참여할지 확신할 수가 없으니까요. 프로젝트를 시작할 때 사람들이 이렇게 많이 참여할 거라고 예상 하셨어요?

아니요. 맨 처음에 크라우드 펀딩 캠페인을 시작할 때 확신은 없었어요. 그럼에도 성공했죠. 미디어에서 저희 이야기를 다루고 며칠 후에 기부가 급속하게 늘었어요. 그때부터 다달이 모이는 기부금액이 많이 늘었죠. 크라우드펀딩이 정말로 효과가 있는 거예요. 당첨자가 1년 동안 기본소득 받는 걸 보장하기 위해서 1년치 기본소득(12,000유로)가 다 모였을 때 당첨자를 뽑아요.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이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있단 걸 알고 놀랐어요. 무엇이 사람들에게 참여하고 싶은 마음이 들게 한 걸까요?

저희 프로젝트를 지지하는 사람들 대부분은 기본소득이 근 미래에 우리 사회의 경제 개념이 될 거라 믿어요. 그래서 그들은 우리 프로젝트가 성장해서 더 많은 사람들에게 기본소득을 주기를 바라요. 또 그들 자신이 당첨자가 되길 바라기도 하고요.

프로젝트를 운영하면서 제일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었다면 무엇인가요?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2개 있는데요. 6월 초에 기자회견을 했는데, 많은 언론에서 저희가 진행해 발표한 전국구 설문조사의 결과를 다뤘어요. 조사 결과 독일 인구의 71%가 기본소득의 이행을 원한다는 사실을 알았어요. 스위스처럼요. 두 번째로 인상 깊었던 에피소드는 독일에서 가장 인기 있는 저녁 티비 프로그램에서 생방송으로 인터뷰 했던 것인데요. 5백만 명이 그 방송을 시청했어요.

나의 기본소득 프로젝트는 인터넷 공간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게 인상적이었어요. 사람들이 기본소득을 왜 지지하는지 게시하는 공간도 재미있고요. 웹사이트를 적극적으로 활용하게 된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저희는 사람과 기본소득이라는 아이디어를 잇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 인터넷 인터페이스라고 생각해요. 가능한 많은 사람들에게 전달하기 위해서도 그렇고, 기금을 모으는데 매우 효과적인 매체이기도 하죠.

프로젝트가 독일 현지에서 “로또 기본소득”이라는 비판을 받는다는 이야기도 들었습니다. 아마도 이런 방식의 기본소득은 불평등을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없다는 비판 같은데요. 이런 이야기들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고 계신가요?

법적으로 따지면 정말 복권도 아니고, 이건 하나의 경합일 뿐이에요. 진짜 복권과 차이가 있다면 추첨에 참여하기 위해서 꼭 돈을 내지 않아도 된다는 거예요. 기부를 하지 않아도 추첨에 참여할 수 있어요.
우리 프로젝트는 1년 동안만 기본소득을 받는다는 제한이 있고, 지금까진 소수의 사람들만 기본소득을 받았어요. 이게 이 실험의 한계라는 것을 저희도 너무 잘 알고 있어요. 만약 사람들이 남은 일생 동안 기본소득을 받을 수 있다면, 오직 1년만 받을 수 있을 때와는 다른 결정들을 하면서 살아갈 거라고 기대해요.

프로젝트의 다음 계획이 뭔지 궁금해요. 계획하고 있는 게 있나요?

중간 목표는 총 100명에게 기본소득을 주는 거예요. 100번째 당첨자가 나오면 수령자 100명을 모두 초대해서 그들이 경험한 것들을 나누고 그 사이의 공통점을 찾아보고 싶어요. 그 후에는 국가적인 파일럿 실험을 해보려고 논의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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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의 기본소득 활동가 인터뷰] 에노 슈미트

[해외의 기본소득 활동가 인터뷰] 에노 슈미트

기본소득 청’소’년 네트워크는 2014년 6월, 몬트리올에서 열린 기본소득 지구 네트워크(BIEN)의 총회에 참가해 해외 기본소득 활동가와 연구자들을 만나고, 인터뷰 했습니다.

기본소득 뉴스를 통해 해외 기본소득 활동가와 연구자들의 인터뷰 영상과 스크립트를 공개합니다.

여섯번째 인터뷰이인 에노 슈미트는 예술가이자, 2008년 다니엘 해니와 함께 <기본소득: 문화적 충동>을 감독했습니다. 또한 스위스 기본소득 이니셔티브의 공동창립자이자 이니셔티브 운동을 성공적으로 이끈 인물이며, 그 결과로 2016년에 기본소득에 대한 국민 투표가 스위스에서 있을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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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자기소개 부탁드려요.

전 에노 슈미트고요, 스위스 출신입니다. 스위스 기본소득 이니셔티브의 공동창립자이기도 해요. 이 이니셔티브는 지금 많은 관심을 받고 있고, 2016년 국민투표에 부쳐질 겁니다. 그해 시민들은 정부에 조건 없는 기본소득을 요구할지 여부를 선택하게 돼요.

 


Q. 어떻게 기본소득 운동을 시작하게 됐나요?

저는 개인의 ‘일대기’에 대해 질문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사람들은 누구나 출발점이 있죠. 제 경우에, 저는 예술을 하는 사람이었고, 화가로서 나름 잘 나가기도 했는데… 그럼에도 이런 질문을 품게 됐어요. “오늘날 예술은 어떤 위치에 있는걸까?” 이 질문은 제 안에서 계속 자라면서 중요해졌죠. 제 답은, 요즘의 예술은 경제 안에, 또 여러 사업들과의 사회적인 관계망 안에 자리 잡고 있다는 것이었어요. 스튜디오나 박물관, 갤러리 안에만 머무는 게 아니라요.
그래서 전 회사에 가봤어요. 다른 이들과 함께 일한다는 게 어떤건지, 물질적인 것을 다룬다는 게 어떤건지, 그리고 그런 사업체들 안에서의 예술이란 무엇인지 알아보기 위해서요. 그리고 전 은행에도 가봤죠. 진짜 돈이라는 건 어떤건지, 어떻게 만들어져서 뭐가 되어 굴러다니는건지 알아보기 위해서였죠. 진짜 그게 뭐지? 상상 속의 돈 말고 진짜 돈 말이에요.
이 두 지점에 대해 제가 예술가로서 얻은 답은, 스스로의 고유한 책임감을 바탕으로 뭐를 해도 해나가자는 것이었어요. 지금 살고 있는 게 바로 자신의 삶이고, 자신의 책임 아래 있다는 걸 깨달아야한단 것이었어요. 또 정말로 해야만 하는 일은 무엇인지, 실제로 자신이 되고 싶은 건 무엇인지 알기 위해서는 우선 ‘개인’이 되어야하죠.  이런 지점에서 모든 사람을 자유롭게 하고, 책임감을 부여하는 조건없는 기본소득의 아이디어가 와닿았어요.

당신 삶에 기회를 주세요. 당신의 일대기에 기회를 주세요. 전에는 생각지 못했던 새로운 것들에 기회를 주세요. 전 세대가 살아온 방식 그대로 겁이 나고 걱정스럽기만 한 삶을 살진 말아요. 새로워지세요. 다양한 활동들을 만들어가고 세상이 정말 필요로하는 건 무엇인지 알아보는 거예요. 이건 예술가들만의 몫이 아니에요. 아직은 돈벌이가 되는 일만이 일이라는 생각이 지배적이에요. 이 때의 일은 내가 당신을 위해, 또는 다른 이들을 위해 하는 것이고, 일의 의미는 남 좋은 일을 한다는 데 있죠. 또 내가 살아가려면 돈이 필요해요. 그러니 많은 돈을 벌어 부자가 되길 바랄 수도 있어요. 좋아요, 하지만 자신이 노예는 아니며 일이 노역은 아니란 사실을 무엇보다 먼저 알아야해요. 일은 바로 내가 하는 것이고, 무엇이 필요한지 내가 판단하며, 내가 하고싶은 것이고, 다른 이들을 어떻게 도울지 내가 알아보는 거예요. 이 모든 것들은 조건없는 기본소득을 통해 더 명백히 드러날 수 있을 겁니다. 기본소득은 사회에 더 활기차고 의미있는 활동들을 심어줄 수 있다고 생각해요.

 

Q. 당신은 스위스 이니셔티브를 하기도 했죠?

네, 전 스위스 기본소득 이니셔티브의 공동창립자에요. 저랑 다니엘 해니Daniel Häni 둘이서 이걸 시작했어요. 다니엘은 기업가로, 저는 예술가로 참여했지요. 중요한 건, 이 움직임이 진실되고 아름다워야한다는 거예요. 모든 게 다 절망스럽기만한 측면에서 시작해선 안돼요. 매력적인 요소를 갖춰야하죠. 우린 매력적이고 우리가 갖고 있는 이 아이디어도 매력적이다, 그걸 보여줘야해요.
우린 행사를 열고, 인터뷰도 많이 했고, 그게 스위스 미디어를 타면서 사람들이 함께 하고 싶다고 연락해왔어요. 그렇게 모인 많은 이들이 이제 이니셔티브를 시작할 때가 된 것 같다고 했고, 우린 그 말을 듣고 정말 그렇게 했죠. 본인 생각에 해야 마땅한 일을 다른 사람들에게 강요하진 않는 게 중요해요. 만일 당신이 어떤 아이디어를 갖고 있다면 일단 스스로 하세요, 앞장서는 거예요.

다른 나라들과는 다른 점일 수 있는데, 스위스에는 아주 민주적인 시스템이 갖춰져있어요. 다른 여러 나라들에서도 민주제를 채택하고는 있지만, 간접민주제 안에는 (어떤 의견 하나가 국가적으로 논의되기까지 거쳐야할) 대표들이 너무 많아요. 스위스는 직접민주제를 채택하고 있어요. 그건 뭔가 사회에 도움이 될 만한 아이디어가 있다면, 곧바로 이니셔티브를 설립할 수 있단 걸 의미하죠. 이 장치를 통해서 누구나 곧장 정치적인 레벨에 도달할 수 있어요. 어느 정당이 당신과 생각을 같이 할 때까지 하염없이 기다리고 있을 필요가 없는 거예요. 외부로부터의 무언가를 기다리지 않고 스스로 기본소득 운동을 전개해나갈 수 있다는 점이 제겐 중요해요. 그게 설령 헛걸음일지라도, 어쨌거나 그 발걸음을 통해 서서히 일어나는 흐름이 당신과 함께 할 거예요. 이게 제가 아는 비밀인데, 정말 그래요. 그래서 우린 스위스 법에 따라 (이 안건을 국민투표에 부치기 위해) 18개월 안에 10만 이상의 서명을 받아냈어요. 우린 정부에 합법적으로 국민투표의 자리를 마련해줄 것을 요청했죠.  국민투표는 보통 정부가 내린 결정에 대해 반대하기 위해 작동하는데, 스위스에서는 우리가 한 것과 같은 일도 가능해요. 이렇게 이니셔티브를 시작할 수 있는 권리는 보다 깊은, 민주적인 이해의 차원에서 가능하죠. 그래서 우린 지금 국민투표의 기회를 얻었어요. 단지 다니엘과 제가 좋은 아이디어라 생각했다는 이유만으로도 이게 국가적인 사안이 될 수 있었던 거죠. 그리고 이제 스위스 사람들 모두가 여기에 대해 생각해보게 될 거예요. 정부를 비롯해 우리 쪽으로 관심을 기울이는 이들 대다수가 기본소득과 함께 다음과 같은 주제들에 대해 논의해요. “미래의 일이란 어떤 것일까?”, “노동과 임금의 관계는 어떻게 변화할까?”, “그 이외에도 많은 것들이 미래에는 어떨지?”… 이런 질문들은 교육의 의미와 연관되어있어요. 무엇을 위해? 어떻게? 또 돈의 의미, 경제의 의미와도 연관되어있죠.

전 사람들이 이 이니셔티브의 중요한 지점들을 이해하고 있다는 사실이 정말 기뻐요. 곧바로 이건 옳아, 틀려, 흑이야, 백이야 하지 않고  스스로 기본소득이라는 아이디어를 만들어가는 과정 안에 들어오고 있는 거예요. 이런 과정에 참여함으로써 기본소득을 이해한다는 게 제게 정말 필요한 부분이기도 해요. 단순히 이런저런 사례들이 있다더라,를 논하는 데 그치지않고 이 아이디어로부터 ‘다른 무언가’를 이해해보려는 거죠. 단지 기본소득 액수를 따지는 걸 넘어서요. 전 이건 마지막에 따져봐도 될 문제라고 생각해요.

 

Q. 청년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청년들에 대한 제 경험으로는, 아마 한국도 똑같을 것 같은데요, 그들은 자신들이 어떤 의미로는 이미 조건없는 기본소득을 받아왔단 사실을 모르고 있어요. 바로 부모로부터 받아온 돈 말이에요. 그래서 그들은 대개 ‘난 그 돈 안 받을래’ 하고, 무엇으로부터든 해방돼서 더 자유로워지고 싶다고, 내가 하는 일이 가치 있고, 그에 대한 대가를 받으며, 그래서 사회로부터 부름도 받는다는 그런 느낌을 통해서 자유로워지고 싶다고 생각해요. 사실 이건 역사 안에서 중요한 발걸음이 되어오기도 했어요. 내가 가족이나 군주, 공작, 왕이든 뭐든에 소속되지 않았으며 일에 대한 대가를 받아 살아가는 사람으로서 자유롭다는 그런 느낌 말이에요. 보다 개인적인 느낌에 가깝죠. 자유롭고, 또 내가 가치있으며, 사회에서 내가 하는 일을 필요로한다는 그런 느낌이요. 그때의 상황은 50년, 100년 전하고는 다른데, 돈을 어떻게든 벌 수는 있어요. 하지만 모두가 자기 자신에 대해 더 많은 책임을 지고, 더 열심히 일해야만 하는 상황에 우린 처해있죠. 이렇기 때문에 자기 자신에 대한 질문, 자신이 일을 통해 무엇을 이루고 싶은지에 대한 질문을 던져보는 건 이전 세대보다 더 어렵게 됐어요.

이런 점에서 젊은 세대는 일을 하기가 더 어려운 상황이고, 한편으로는 컴퓨터나 기계들이 오래되고 어려운 일들을 대체하고 있어요. 새롭고 어려운 일들은 또 다른 문제인데요, 이건 다른 종류의 수입원을 필요로해요. 탄탄히 보장되어있으면서도 당신을 특정한 일에 얽매이게 하진 않을 그런 수입원이 필요하죠. 이건 보다 창의적이고 효과적이며 역동적일 뿐만 아니라 오늘날 정말 필요한 것이에요. 청년세대가 이 세계 안으로 진입하도록 하기 위해서, 또 앞으로의 세계를 위해 싸우게끔 하기 위해서 정말 필요한 것이죠. 그 세계란 바로 그들이 이것저것 해볼 수 있는 여지를 갖고, 각자의 길을 찾아 가볼 수 있으며, 그 모든 것을 자신의 진심으로부터 해볼 수 있는 그런 세계에요. 전 이게 바로 사회와 역사의 발전라고 생각해요. 이건 또 다른 발걸음이기도 한데, 역사를 들여다보면 모든 나아감은 더 많은 자유와 더 많은 책임을 수반했거든요. 조건없는 기본소득이 바로 다음에 내디뎌야 할 발걸음입니다. 이거 그냥 우스갯소리가 아니에요. 사람들이 게을러질 거라는 오해, 또 이 아이디어가 환상일 뿐이라는 오해들이 있죠. 아닙니다, 이건 오히려 더 열심히 일하는 길이에요. 방식이 다를 뿐이죠. 바로 우리가 원하는 방식으로 일하는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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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의 기본소득 활동가 인터뷰] 스탠 주르단

 

[해외의 기본소득 활동가 인터뷰] 스탠 주르단

기본소득 청’소’년 네트워크는 2014년 6월, 몬트리올에서 열린 기본소득 지구 네트워크(BIEN)의 총회에 참가해 해외 기본소득 활동가와 연구자들을 만나고, 인터뷰 했습니다.

기본소득 뉴스를 통해 해외 기본소득 활동가와 연구자들의 인터뷰 영상과 스크립트를 공개합니다.

다섯번째 인터뷰이는 기본소득 프랑스 네트워크와 기본소득 유럽 네트워크의 코디네이터인 스탠 주르단입니다. 미디어활동가(mediactivist)인 스탠 주르단은 2013년 유럽의 기본소득 시민 발의 서명 운동을 이끌었던 활동가 중 하나로, 현재 유럽을 기반으로 기본소득 썸머스쿨, 기본소득 신문 발간 등 왕성한 활동을 이어나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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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스탠 주르단

 

Q. 자기소개  부탁드려요.

A. 저는 스탠이고요. 기본소득 프랑스 네트워크와 기본소득 유럽 네트워크의 코디네이터입니다.

 

Q. 프랑스의 청년들은 어떤 곤란함을 겪고 있나요?

A. 프랑스를 비롯한 유럽 전반이 혼돈에 빠져있습니다. 이럴 때 고통받는 건 언제나 가난한 이들과 젊은이들이에요. 왜냐하면 프랑스 같은 나라에서는, 기본적으로 특정한 사람들의 현존하는 특권을 보장하면서 젊은 세대의 사회적 보호망은 줄여가는 식으로 복지제도를 발전시켜왔거든요.
우리가 목격해본 바로는 그렇고, 재정위기의 경우에서도 이런 경향을 발견할 수가 있어요. 우리는 빚을 갚기위해 할 수 있는 모든 걸 다 하고 있는데, 이 빚이란 게 바로 구세대로부터 물려받은 거거든요. 그걸 우리가 떠안게 된 거예요. 진짜 불공평한 일이죠.
확실히 젊은이들은 점점 더 많은 불안정성과 직면하고 있어요. 여기서 불안정성이란 단지 돈을 적게 번다는 것만을 의미하는 게 아니라, 심리적인 안정과도  분명히 연관되어있어요. 어쩌면 누구는 뭐라도 일자리를 구할 수는 있을텐데요. 아시다시피 2주나 3주, 아니면 두 달 정도 일하고 다시 불안정한 상태로 돌아올 가능성이 커요. 장기적인 계획은 아예 세울 수가 없기 때문에 삶이 정말 정말 힘들어지는 겁니다.

그래도 특히 유럽에서 눈에 띄는 점은, 유럽연합을 중심으로 이런 상황에 대해 뭔가 결단을 내리려 하고있다는 건데요. 점점 더 분명해지는 어려움에 맞서 구체적인 조치를 취하려하고는 있죠. 그래서 지금 유럽연합이 일자리 보장제도를 계획하고 있긴 한데… 제가 보기엔 이거 그냥 사탕발림이에요. 예산으로 책정된 몇 백만 유로는 아주 특정한 몇몇 집단만을 대상으로 하고 있을 뿐이죠. 가난하고 젊고 또 불안정한 사람들은 계속해서 옮겨다니기 때문에 고려대상이 아니에요. 불안정한 상태에 놓인 사람들은 잘 뭉치지 못합니다. 처한 상황이 매번 바뀌고, 사는 도시도 바뀌고, 늘 여기저기 옮겨다니니까요. 그래서 그들이 힘들여 무언가에 맞서 싸운다는 건 거의 불가능해요. 이런 상황에서 투쟁하기란 훨씬 힘이 드는 거죠.

구체적으로 프랑스에는 조건이 딸린 최소소득 프로그램이란 게 있는데, 만일 당신이 25세 이하라면 이걸 신청할 수가 없어요. 그러니까 나이 스물 다섯 이하는 가난해서는 안된다는 건데, 완전 말이 안되죠. 게다가 이 프로그램은 체계가 너무 복잡해서, 수혜자격 있는 사람의 절반이 아예 신청을 하지도 않아요. 정말 너무 복잡한데다가 정보가 제대로 주어지는 것도 아니라서요.

 

Q. 기본소득이 청년들을 어떻게 도울 수 있을까요?

A. 음, 기본소득은 심리적 불안함을 해체하는 것에 대한 아이디어라고 생각합니다. 이게 단지 돈을 주는 것의 문제만은 아닌 게, 사람들은 어차피 어떻게든 살아나갈테고 이미 여타 보조금이나 혜택을 받고 있기도 하기 때문이에요. 프랑스는 공교육 제도가 꽤 잘 되어있단 게 장점이긴 해요. 문제는, 지금 사람들이 노동시장에 진입하기가 너무 힘들다는 거죠. 이 때 기본소득은 사람들을 심리적으로 안정시켜주는 동시에, 지금 노동시장이 그들에게 주는 굴욕감을 면할 수 있게 해줄 거예요. 왜, 계속 백수로 놀고 있으면 소외감도 느끼고 친구들도 잘 안 만나게 되잖아요. 한 잔 하러 나가거나, 친구네 놀러가거나, 영화를 보러가거나, 그거 다 돈이니까요. 이렇게 가난은 배제를 낳아요. 특히 젊은이들이 이런 상황 속에서 삶을 시작해가기란 정말 힘이 들죠.

 

Q. 기본소득 실현을 위해 무슨 일을 할 수 있을까요?

A. 글쎄요, 긴 얘기가 될 것 같은데요.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아주 많습니다. 우선 인터넷으로 정보를 검색해보고, 스스로 공부하고, 여러분 나라와 도시에서 활동 중인 단체를 찾아 지지하면서 그들이 하는 일을 함께 해보세요. 직접 행동할 시간이 없을지도 모르겠네요. 그럴 경우엔 그냥 꾸준히 새로운 소식을 받아보고 정보를 취하는 것도 함께 하는 한 방법이죠. 물론 친구들한테 이런 게 있다고 말해볼 수도 있는 거고요.
전 기본소득이 당장에 실현가능한 선택지라고는 생각 안 해요. 장기적인 관점으로 한번 생각해보세요. 기본소득이 너무 이상적인 얘기처럼 들리더라도, 실현될 수 있다고 한번 믿어보는 거예요. 더 많이 고민할 수록 실제로 더 많은 것을 얻게 될 겁니다.

 

Q. 기본소득 운동이 당신 스스로를 어떻게 변화시켰나요?

A. 우리는 이 캠페인을 일 년 동안 진행하면서 100만 서명을 받으려고 했었는데, 결국 30만 개를 받았어요. 그런데 전 그것만해도 많이 받은 거라고 생각해요. 왜냐하면 제 친구들만해도, 기본소득을 잘 이해하지도 못했고 거기에 찬성하지는 더더욱 않았었고요. 걔네는 우리가 이렇게 많은 서명을 받으리라고는 정말 생각지도 않았었거든요. 어쨌든 캠페인을 하는 동안에 전 유럽 전역을 떠돌아다니면서 여행도 많이 했고, 기본소득 활동가들도 많이 만났어요. 유럽 어느곳에서나 사람들이 우리 이야길 들어주고 흥미있어하는 걸 보면서 굉장히 고무됐었죠.
이 캠페인을 통해 각국에서 움직임이 생겨나는 걸 보는 게 정말 흥미로웠는데요,  진짜 다양한 이야기들이 나왔어요. 똑같은 아이디어를 가지고도 각국이 처한 맥락에 따라 완전히 다른 얘기들이 나온 거예요. 올해 제가 목격한 것들은 정말 놀라웠어요… 처음에 우린 고작 한 두 명이서 인터넷에다가 기본소득을 알리곤 했는데, 지금은 이게 하나의 운동이자 공동체로 성장한 거예요. 특히 세 달에 한 번 정도 유럽 어딘가에서 만나 회의를 해온 게 정말 중요했어요.
정말로 중요한 순간들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우리가 뭔가에 대해 의견을 같이 했을 뿐만 아니라 서로의 가치관을 공유하고, 친구가 되면서 하나의 공동체로 자라났단 점이 정말 소중하단 걸 깨달았어요. 하지만 뭐니뭐니해도 이런 운동을 지속해나가는 데 있어서 제일 중요한 요소는, 바로 믿음이라고 생각해요. 우리는 서로를 믿어야하고, 또 우리의 능력을 믿어야하며, 정치적 분열 그 너머를 바라봐야만해요. 그게 바로 열쇠입니다.

 

Q. 한국의 청년들에게 하고 싶은 말

A. 음, 전 한국에 대해 잘 알진 못해요. 그렇지만 일단 포기하지 말라고 말해주고 싶습니다. 전세계 청년들이 정치제도나 사회에 대해 목소리를 내고 이해 받기가 점점 더 힘들어지고 있단 걸 알아요. 하지만 포기하지 마세요. 이런 상황에서 기본소득이 하나의 해결책이 될 수 있는데, 이건 젊은이들 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를 위한 거예요. 단지 젊은이들이 부모보다 더 나은 삶을 살기 위함이 아니라, 우리 모두를 위한 것이죠. 더 나은 사회를 만들기 위함이에요. 그러니 포기하지 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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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의 기본소득 활동가 인터뷰] 도루 야마모리

 

 

[해외의 기본소득 활동가 인터뷰] 도루 야마모리

기본소득 청’소’년 네트워크는 2014년 6월, 몬트리올에서 열린 기본소득 지구 네트워크(BIEN)의 총회에 참가해 해외 기본소득 활동가와 연구자들을 만나고, 인터뷰 했습니다.

기본소득 뉴스를 통해 해외 기본소득 활동가와 연구자들의 인터뷰 영상과 스크립트를 공개합니다.

 

네번째 인터뷰이는 일본 도시샤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는 연구자 겸 활동가인 도루 야마모리입니다. 도루 야마모리는 주로 여성주의 경제학과 기본소득 등에 대해 연구하고 있는데, 그의 논문 중 싱글맘들의 기본소득 투쟁을 다룬 <잊혀진 여성들: 기본소득을 위한 싱글맘의 잊혀진 투쟁>은 한국어로도 번역되어 있습니다. 또한 최근엔 <일본의 기본소득>이라는 책을 공동 집필하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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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도루 야마모리

 

Q. 간단히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A. 제 이름은 도루 야마모리입니다. 일본에서 태어나 인생의 대부분을 일본에서 보냈으며, 현재는 영국에 살고 있습니다.

 
 

Q. 오늘날 일본의 젊은이들이 힘들어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 이유가 한국의 젊은이들이 힘들어하는 이유와 관련 있을 것 같은데요.

A. 네,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한국에서도 경우에 따라 다를 것 같기는 하지만, 사립대학에 재직하고 있는 교수로서 보면 저의 학생들은 상대적으로 특권층 출신이 많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젊은 사람들은 좋은 회사에 취직하는 것에 대해 엄청난 부담감을 느끼고 있습니다. 좋은 회사에 취직하기 위해서 그들은 대학교에 다니는 학생 신분일 때 계약을 해야 합니다. 만약 모범적인 트랙에서 벗어나게 되면 그들은 좋은 회사에 취직할 수 없습니다. 성공한 트랙과 실패한 트랙이라는 커다란 선택의 갈림길에 있는 것이죠.

아시아의 젊은 학생들 대부분은 부유층이건 아니건 간에 이런 거대한 압박 때문에 고통 받고 있습니다. 특히 가난한 집안 출신의 젊은 학생들은 비정규직 노동을 하게 되기도 하는데, 요즘 사용하는 말로 ‘프레카리아트’라고 하지요.

저는 한 공사 현장 노동자들의 조합을 지지했었는데, 그들 대부분은 임금을 받는다는 이유로 사회 보장을 받을 수 없었기 때문에 홈리스 상태였습니다. 또한 건축 회사에 속해 있지 않다는 이유로 임금을 거의 받지 못하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그러한 프레카리아트 노동자들의 대부분은 시골 출신에 교육을 잘 받지 못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이 겪었던 상황이 그들의 능력이나 선택의 문제 때문에 일어난 것이 아니라 단지 사회적 차별과 평등의 문제 때문에 일어난 것이었기에 그들은 일어나서 복지를 요구한 것입니다.

이런 문제들은 경제 위기, 규제완화 등을 거치며 계속 악화되고 있습니다. 이러한 상황을 저는 매우 안타깝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제가 보여드리고 싶은 책에 있는 내용이기도 한데, 아무래도 세계의 여러 노동조합(trade union)들이 기본 소득을 완벽하게 지지하고 있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홋카이도의 공사장 인부들로 이루어진 한 노동조합이 기본소득을 지지하고 연합의 안건으로 수용한 사례가 있습니다.

지진으로 인한 후쿠시마 원전사고가 일어나기 조금 전의 일인데, 경제 불황을 겪는 과정에서 이 조합에서는 기본소득을 안건으로 발의했으며, 지진이 일어난 후 그들은 커뮤니티 안에서 공개적으로 기본소득 이슈를 논의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런 예시가 일본에서 기본소득을 지지하는 운동 중 하나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Q. 기본소득이 어떻게 젊은 사람들을 도울 수 있을까요?

A. 저는 유럽의 경우가 다르다는 말에 동의하지는 않지만, 아무래도 확실히 한국과 일본은 문화적인 면에서 꽤 비슷하다고 생각합니다. 저조차도 개미처럼 일해야 한다는 노동 정서가 지배하는 사회에 20년 넘게 살아왔으니까요. 제게 4살짜리 아들이 있는데 한 두 해 전까지만 해도 저는 아들을 매일 유치원에 데려다주고 나서 제 직장에 가야 했습니다. 그런데 아들이 유치원에 가기도 싫어하고, 가는 길 내내 하품하면서 늘 저와 함께 있고 싶어 하고, 움직이지를 않았어요. 그러다보니 저도 버릇처럼 이렇게 말하게 되더군요. “아빠는 일하러 가야 해. 아빠가 일 안하면 아들이 유치원 못 다니잖아. 우리 저녁에 밥 먹으려면 아빠가 일을 해야지.” 그런 개념은 제가 철저하게 반대하고 있는 것인데도 말이죠.

그런 문화 양식의 사회에서 살아가는 것에 익숙해진 사람들, 그런 방식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은 자신의 삶과 미래를 이끌어나가는 방향에 대해 고정된 관념을 갖게 됩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돈을 벌어서 생존을 도모하는 방식 이외에 본인이나 가족, 친구들, 나아가 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다른 방식과 비전을 가져야 합니다. 삶이란 그런 것이어야 합니다. 인생이 꼭 생존만을 위한 것은 아니니까요. 서로를 돕고, 즐겁게 해주는, 더 행복하고 풍성한 삶의 방식을 생각해야 합니다. 이런 식으로 살아가는 방향을 생각한다면, 우리에게는 기본소득이 필요합니다.

젊은이들이 기본소득을 통해 모든 고뇌로부터 벗어날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경제적인 생존을 위한 고뇌에서는 조금 벗어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은 좀 더 세계에 기여할 수 있는 방향으로 성장할 수 있을 것입니다.

 
 

Q. 기본소득과 페미니즘을 공부하고 또 그 분야에 집중하게 되신 이유는 무엇입니까?

A. 여기에서 말하기에는 조금 긴 이야기가 될 수 있겠네요. 페미니즘에 입문하게 된 계기는 그다지 좋은 일로 인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공사 현장 노동자들의 노동조합을 위한 운동을 하게 되었는데, 그 팀을 꾸려나가면서 대학생과 함께 운동을 진행하게 되었습니다. 짐작하실 수 있겠지만, 공사장 노동자들은 주로 남성들이었고, 여성은 거의 없었습니다. 그들의 성적 지향에 대해서는 잘 모르지만, 호모섹슈얼이나 인터섹슈얼의 문화 역시 부재했습니다. 그들은 아주 남성 중심적인 집단이었고, 여성과 소통하는 것에 익숙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이 남성 중심적인 사람들이 저의 동료 여성 학생들과 원활하게 소통할 수 있을지에 대해 고민했습니다. 문화 코드가 달라서 충돌할 수 있으니까요.

그러던 중 여학생들이 불쾌한 상황을 경험하는 것을 곁에서 목격하게 되었습니다. 성추행이라고 볼 수 있죠. 하지만 공사장 노동자들과 함께 프레카리아트 운동을 하는 상황에서 그들이 성적으로 불쾌감을 일으키는 행동을 했을 때 이에 곧바로 대처하는 것은 생각보다 쉽지 않습니다. 어떻게 말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공사장 노동자들이 허락을 받지 않은 상태에서 여성 동료들의 몸을 만지거나 하는 그런 상황에서 말입니다. “성추행을 저지른 저 남성 노동자를 이 운동에서 제외시켜야 하나?” 이런 고민을 하게 되지요. 그것이 제가 페미니즘에 입문하게 된 계기였습니다. 그런 상황 속에서 성차별적인 사고방식을 지닌 사람들을 비판하고, 문제를 풀어나가기 위해서 말이죠. 그것이 제가 처음 페미니즘에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였습니다.

아무튼 저는 계속 이 분야에 관심을 가졌고, 한편으로는 계속 제 스스로의 힘으로 돈을 벌어야 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청소 노동자로 일하기도 했습니다. 청소 노동자들도 보통 비정규직 노동자들이었지요. 청소 노동자로 일하면서 교토 대학의 교직원실, 강의실에서 많은 관계자들과 학생들을 만났습니다. 그들을 보면 경제가 아주 잘 돌아가고 있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들은 정말 평범한 일본의 시민처럼 보였거든요. 정말 다른 세계에서 살고 있는 것이지요.

그런데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그들이 정말 평범한 일본의 시민들이라면, 내가 지난날 만났던 사람들은 도대체 어떤 사람들이지?” 저는 그래서 경제학을 해체하고 다시 세우려고 노력합니다. 경제학에서 상정하는 인간은 합리적이고 경제적인 인간이지요. 그런 합리적이고 경제적인 인간은 우리가 일상 속에서 만나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경제학에서 이야기하는 합리적인 인간은 하루에 24시간을 일할 수 있고, 다른 조건에 신경 쓰지 않고 오직 일만 하는 인간이지요. 그것이 경제학에서 바라보는 인간의 모형입니다. 일을 하기 위해서 다른 어떤 것을 준비할 필요도 없고, 가족이나 다른 사람들을 신경 쓸 필요도 없는 인간 모형 말입니다. 그래서 저는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그래, 그런 인간 모형의 전제를 바꾸자.” 경제학적 인간 모델을 새롭게 정립하기 위해 보다 인간적인 철학이 필요하다고 생각했고, 한 걸음 한 걸음씩 나아가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어쨌든 제 주변에는 페미니스트 친구들이 많습니다만 저는 저 스스로를 페미니스트라고 꼭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정확히는 성차별반대주의자(anti-sexist)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저는 가부장적인 사회에서 자랐습니다. 저희 아버지께서는 저를 비판하실 때 늘 저를 법도도 모르는 놈이라고 부르시더군요. 어쩌면 제가 저의 섬세한 면모보다는 ‘남성성’을 내면화했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제 가족들은 저의 섬세함을 나약한 것이라고 보고 그것을 좋아하지 않았어요. 그래서 저는 가족들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저 스스로를 ‘남성화’하려고 노력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남성성’과 관련하여 제가 겪은 사회와의 충돌 및 갈등이 페미니즘에 대한 저의 관심과 연결되어 있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쓴 페미니즘에 대한 논문을 보면, 대부분이 기본소득과 관련되고 그 개념에 집중되어 있습니다. 저는 일본에서 1999년에 처음 기본소득에 대한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때 사람들은 제가 광적이라고, 미쳤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기본소득 개념이 너무 이상적이라고 생각했고, 제 이야기를 믿지 않고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았죠. 저는 골방에 틀어박혀 책만 읽게 되었고, 사람들과 기본소득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지 못했습니다.

저에게 온 큰 변화는 2002년에 일어났습니다. 제게 해외로 나갈 기회와 돈이 생겼고, 저는 영국으로 가서 당시 기본소득 유럽 네트워크의 창시자이자 영국의 기본소득 네트워크를 만든 사람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 분은 제가 했던 운동과 비슷한 운동을 이미 1970년대에 영국에서 하고 있었습니다. 그 운동은 ‘청구인연합운동’이라고 불리는데, 이 운동을 하는 사람들이 기본소득을 요구했습니다. 그 교수님이 제게 운동에 참여하는 사람들을 소개해 주었는데, 절반 이상의 참여자들이 여성, 특히 싱글맘이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1970년대의 여러 사회 운동에서 여성들이 주축이 되어 활동했고, 기본소득을 요구했다는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 운동에서 요구된 바는 기본소득과 비슷하지만 조금 더 넓은 범위 개념인 ‘최저 보장 소득(guaranteed income)’이었습니다. 이 운동은 사람들에게 거의 잊히다시피 했지만 매우 중요한 것이었고, 재조명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기본소득에 대한 교육적인 책을 출판하게 되었고, 그 책의 절반 이상에서 여성들의 투쟁에 대해 다뤘습니다.

책이 출판되고 나서 사회 운동가들, 그 중에서도 싱글맘 사회 운동가들이 제게 연락을 해왔죠. 그런 식으로 활동들이 이어지게 되었습니다. 일본에서 기본소득을 지지하는 사람으로서 제가 누군가에게 10초 동안 기본소득에 대해 설명해야 한다면, 제 대답은 이렇습니다.

지금까지 그래왔고 지금도 그렇지만 기본소득이란 “가족 중 누가 돈을 벌 것인가?” 라는 질문에 대한 견해입니다. 사실 그 질문은 가족 구성원들 모두의 말문을 닫아버릴 수 있는 마법의 질문이지요. 만일 우리에게 기본소득이 생긴다면, 그 마법의 질문에 대해 아무도 답할 필요가 없을 것입니다. 기본소득을 갖게 된다면 사람들은 보다 자유로워질 것입니다. 기본소득을 갖게 된다면 사람들은 성차별주의뿐 아니라 핵가족의 문제점으로부터도 벗어나게 될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기본소득과 페미니즘 사이의 독특한 연결 고리입니다.

물론 기본소득을 통해서 이러한 문제점을 완전히 없앨 수는 없겠지만, 경제적인 면에서 볼 때, 남성 지배적인 가족관으로부터 여성을 보다 자유롭게 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Q. 마지막으로 한국 청년들에게 한마디 부탁드립니다.

A. 돌아보면 이런 생각이 듭니다. 우리의 삶은 유일한 기회입니다. 게임에서처럼 다음 기회가 있는 게 아닙니다. 세상에는 절망적인 상황이 많이 있지만, 우리에게는 여전히 희망이 있습니다. 영어로는 어떻게 표현하는지 모르겠습니다만, 우리 스스로 변화의 도화선이 됩시다. 상황을 비관하기보다는 그냥 우리가 원하는 변화를 이루어나갑시다. 무언가를 합시다. 그러면 사회가 당신이 원하는 모습으로 바뀌어나갈 것입니다. 그게 저의 메시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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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의 기본소득 활동가 인터뷰] 가이 스탠딩

 

기본소득 청’소’년 네트워크는 2014년 6월, 몬트리올에서 열린 기본소득 지구 네트워크(BIEN)의 총회에 참가해 해외 기본소득 활동가와 연구자들을 만나고, 인터뷰 했습니다.

기본소득 뉴스를 통해 해외 기본소득 활동가와 연구자들의 인터뷰 영상과 스크립트를 공개합니다.

 

세번째 인터뷰이는 SOAS(School of Oriental and African Studies) 개발학 교수이자 기본소득 지구 네트워크(BIEN)의 공동 설립자인 가이 스탠딩 입니다. 가이 스탠딩은 최근에 인도에서 진행된 기본소득 파일럿 실험을 주도했던 연구자이며, 한국에서는 <프레카리아트>의 저자로 알려져있습니다.

 


 

(3) 가이 스탠딩

 

Q. 지금까지 기본소득 운동을 계속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A, 우리는 1986년 기본소득 유럽 네트워크를 설립하면서 시작했습니다.철학자, 경제학자, 사회학자, 활동가 등으로 이뤄진 이들이, 세계화와 노동시장 유연화가 경제 불안정을 확산시키고 있다는 인식 아래 모여들었어요. 1980년대 세계화로 인해 벌어진 주된 상황은 그러했죠. 유럽의 낡은 복지제도는 보험료를 내는 만큼만 혜택을 받는 사회보험 시스템에 기반하고 있었기 때문에 이런 상황에 적절히 대처할 수가 없었어요. 보험료를 낼 수 없게 된 점점 더 많은 수의 사람들이 갑자기 불안정해졌죠. 그들은 아무런 혜택도 돌려받을 수 없었어요. 게다가 이 때 복지제도는 가난한 이들을 대상으로 더 많은 수혜조건을 요구하는 자산조사의 방식으로 전환하게 됩니다. 이건 아무것도 해결해주지 못했고, 1980년대 가난과 불평등은 심화되어만 갔어요.

이런 상황에서, 그렇다면 이제 다른 방향으로 가는 것에 대해 한번 논의해보면 어떨까, 말을 꺼냈습니다. 모두에게 적당한 수준의 기본소득을 주는 권리 기반의 접근을 해보면 어떨까? 이건 사람들이 스스로의 삶을 통제하며 살아가고 있다고 느끼게 할 수 있을 거예요. 다시 말해 모두에게 합리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 능력을 주는 거죠. 전에 말했듯이(편집자 주: 가이스탠딩은 이 인터뷰 전에 인도의 기본소득 파일럿 실험에 대해 발표했다), 인도 마을들에서 우리가 목격해온 그 능력들을 말이에요.

그 지점이 바로 우리가 이 일을 시작하게된 동기였습니다. 점차 유럽 바깥의 남미, 한국, 일본 등 각국 사람들이 그게 바로 그들 나라의 현실이라고, 함께 하고싶다고 말을 걸어오기 시작했어요.

2004년 바르셀로나 컨퍼런스에서 이 네트워크의 이름은 “BIEN”으로 바뀌었는데, 이 때부터는 모두를 위한 기본소득 “EARTH” 네트워크가 된거죠.그 때부터 전 세계 멤버들이 늘어났고, 동료들이 여기저기서 멋진 기여를 해왔습니다. 특히 이 일에 연관된 한국인의 수와 더불어 기본소득 한국 네트워크의 설립은 제게 아주 감명깊은 것이었어요. 존엄한 삶의 필수요소로서 기본소득을 제시하는 일에 쾌활하게 헌신하고 있는 한국인 친구들, 활동가들, 지식인들을 알게 되어 정말 기쁩니다. 다들 알고 있듯이, 한국의 프레카리아트 계급은 전세계 어느 나라 못지않게 급격히 불어나고 있어요. 젊은이들, 특히 젊은 여성들이 취약하고 불안한 상황에 놓이고 있죠. 수많은 이들, 특히 젊은이들은, 그들이 불안정한 일자리를 갖고 불안정한 생활을 하며 매순간 불확실성 속에 살아간다는 점에서, 그리고 내일 당장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질 지 알 수가 없다는 점에서 위태로움을 느끼고 있어요.

제가 책에서 썼던 표현은 “알려지지 않은, 알 수 없는 것들/사람들(unknown unknowns)”이에요. 내일 당장 사고로 차에 치이기라도 하면, 악성부채(bad debt)는 지속불가능한 부채(unsustainable debt)가 되어버리겠죠. 이제 사람들은 불안정성과 부채라는 짐을 벗어버릴 수가 없게 됐습니다. 그러자 많은 나라들에서 사회적 병리현상, 자살, 약물중독과 같은 반응들이 터져나왔어요. 이런 결과들을 가지고 각국 정부들이 마치 그게 프레카리아트 삶의 원인인냥 들먹이고 있다는 점에 전 정말 화가 납니다. 술이나 먹고 약이나 하고 자살까지 하는 저 젊은 애들, 걔넨 그래서 안된다고 비난들을 하는 거예요.

여기에 대해 우린 분노해야만 합니다. 우리가 상대하고 있는 건 불안정한 노동 공급을 원하고 또 거기에 의존하는 세계 자본주의의 체계적인 상황, 체계적인 요구이기 때문이에요. 이 상황은 사람들이 일자리가 자주 바뀌고, 떠돌아다니고, 실업상태를 받아들이고 재시도하며 영원한 진부화의 삶, 영원히 위태로운 삶을 좇도록 합니다. 인간 삶의 위기에 분명히 대처하기 위해 우리는 이런 상황을 21세기 사회의 기본상태로 받아들이지 않으려 합니다.

부모님과 조부모님 세대는 경제체제를 쌓아올리기 위해 부단히 일했는데, 그 결과는 한국, 영국, 어디에서든 소수 특권층만이 엄청난 액수의 돈을 벌어들이게 된 것이었습니다. 그들은 지대(rent) 추구자들이에요. 이미 갖고 있는 부를 통해 점점 더 많은 몫을 차지해가죠.

프레카리아트의 경우 임금은 삭감되거나 불안하게 요동치고, 이윤을 남길 방법이란 없으며, 연금이라니, 그런 건 그림의 떡일 뿐인데 말입니다. 그러니 우린 새로운 소득분배 시스템을 위해 싸워야합니다. 당신과 나를 비롯한 모두의 부모님들과, 또 누군지 모르는 이들에 의해 축적되어온 소득을 나눠받을 권리가 누구에게나 주어질 새로운 시스템을 위해서 말입니다. 우리를 둘러싼 부를 누가 만들어낸 것인지 아무도 알진 못해요. 하지만 모두에게 기본을 보장받을 권리가 있다는 것만은 확실합니다.

기본에 대한 보장없이 사람은 합리적으로 판단할 수가 없기 때문이에요. 누구나 무엇인가를 얻게 될 것이기 때문에, 우리는 모두를 위해 기본소득을 받아야한다고 주장해야만 해요. 공동체와 공유, 가족에 대한 더 나은 감각이 자라날 겁니다. 제가 알기로 유럽에서와 마찬가지로 전통적인 한국사회에서도 중요한 요소로 작용해온 많은 것들이 나아질 거예요. 나도 상대 입장에 처할 수 있고, 상대도 내 입장에 처할 수 있다고 여기는 전통적인 나눔사회에서처럼 말이에요. 우리는 공감에 대한 감각을 갖춰야만 합니다. 저의 새 책도 공감의 필요성에 대한 것이에요. 모르긴해도 분명히 한국에도 그걸 지칭하는 단어가 있겠죠.

우리 모두는 기득권층과 정부당국에 “우리가 커져가는 불평등, 불안정성과 위태로움을 참고 견딜 거라고 생각하지 말라”고 외치기 위해, 프레카리아트와 프레카리아트가 될까 두려운 이들을 위한 투쟁에 함께 해야만 합니다. 그리고 여기에 우리가 있다고, 우리는 기본소득을 하나의 권리로서 요구하고 있다고 외치는 겁니다.

제 생각에 이 운동은 경제안정을 위한 싸움인 동시에 사회정의를 위한 싸움입니다.

이것이 BIEN을 설명하는 전부입니다.

 

Q. 한국의 청년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A. 프레카리아트 계급에 속한 이들은 대체로 봉급생활자들보다 훨씬 열심히 일해야합니다. 원치 않는 많은 업무들이 그들에게 주어지죠. 그들은 대체로 적은 돈을 받으면서, 완전히 풀타임으로 일해야 하는데, 그들 노동의 많은 부분에 돈이 지급되지 않아요. 돌봄노동과 같이, 여성들이 하는 많은 일들이 여기에 포함됩니다. 일자리를 찾고, 직업훈련을 더 받고, 정보망을 구축하는 것처럼 시간을 잡아먹는 많은 일들 또한 여기에 포함돼요. 이런 환경 속에서 돌봐야 할 아이가 있고, 또 빚이 있고, 정보망도 구축해야된다면 당연히 아무런 시간도 낼 수가 없을 거예요. 어떻게 시간을 잘 써야 가난과 불안정함에서 벗어날 지 모르겠는, 이른바 ‘프레카리아트화’ 되어버린 정신 상태로 인해 많은 이들이 고통 받고 있어요.

이런 상황에 처해있는 사람들에게 저는, 할 수만 있다면 힘을 갖추기 위해, 또 어떤 움직임에든 동참하기 위해 노력해보라고 말하고 싶어요. 당신은 혼자가 아니니까요. 당신은 혼자가 아닙니다. 우리의 투쟁은 바로 그 사실을 모두에게 이해시키기 위함입니다.

지난 3년 간의 모든 운동과 저항 속에서 벌어진 가장 멋진 일들 가운데 하나는 어떤 깨달음이 있어왔다는 거예요. 아침에 거울을 들여다보면서 전 더 이상 실패자라는 이유로 스스로에게 미안해하지 않습니다. 거울 안에서 나와 같은, 또 당신, 당신과 같은 수없이 많은 사람들을 보기 때문이에요.

우리 모두는 하나의 집단적인 경험의 일부입니다. 같은 문제를 경험하고 있는 친구들, 이웃들, 공동체 구성원들 속에서 스스로의 모습을 발견하고 다같이 힘을 합칠 때에만 이 불안정성과 위태로움을 극복할 수 있어요.

이 인터뷰 발언을 듣는 모든 이들, 우울해하고, 스스로를 소외되고 하찮은 존재라 느끼고, 심지어 자살충동까지 느끼고 있을 지 모를 모든 이들에게 제가 드리고 싶은 말씀은, 그러지 말라는 겁니다. 강하다고 느껴보세요. 우리 모두는 인간사의 일부라는 것을 깨달음으로써 강해집니다. 우린 그 강함을 자기 자신과 사랑하는 이들, 친구들, 친척들에게 빚지고 있어요.

그러니 투쟁에 동참하고, 조직하세요. 움직임에 함께 하세요.저는 30년 동안 이 투쟁에 몸담아왔는데, 우리가 인도에서 지금까지 무엇을 해왔는지와, 또 거기서 목격해온 일들에 겸허함을 느낍니다. 사람에게 희망이 주어지면, 스스로 회복해서 자신을 위한 삶을 만들어나갈 수 있다는 걸 이젠 알아요. 그 이후로 삼,사십 년의 인생을 쌓아 올려가는 것도 가능해지죠.

그러나 먼저 투쟁해야만 합니다. 아무것도 쉽게 이뤄지진 않아요. 이건 적극적인 정치 참여와 적극적인 조직화의 문제에요. 어려운 일이란 걸 압니다, 어려운 일이란 걸 알아요. 깨지고 박살나기를 계속 해야만 하는 건 정말로 어려운 일이죠.

하지만 여기에 대해 저는 힘을 갖추라고 말씀드릴 수 밖엔 없습니다. 우리 모두가 어떤 힘을 갖추고, 자신이 이해한 경험을 다른 이들과 연관지을 수 있을 때에만 비로소 희망이 생겨나 앞으로 나아갈 수 있기 때문이에요.

한국 친구들에게는, 한국 프레카리아트 계급의 경험에 연대감을 느끼고 있다고 말해주고 싶습니다. 또 지금 기본소득을 위해 일하고 이는 이들에게 연대감을 느낍니다.

이 일에 뛰어들어 이상을 위해 투쟁하고 헌신하는 일이 용기를 필요로한단 걸 잘 알기에, 여러분 모두에게 경의를 표합니다.

행동하면, 그것이 우리 삶에 무엇인가를 가져다주리란 걸 우린 알아야해요. 정말 그렇습니다.

그 긴 여정은 중요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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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의 기본소득 활동가 인터뷰] 필립 반 빠레이스

 

기본소득 청’소’년 네트워크는 2014년 6월, 몬트리올에서 열린 기본소득 지구 네트워크(BIEN)의 총회에 참가해 해외 기본소득 활동가와 연구자들을 만나고, 인터뷰 했습니다.

기본소득 뉴스를 통해 해외 기본소득 활동가와 연구자들의 인터뷰 영상과 스크립트를 공개합니다.

두번째 인터뷰이는 기본소득 지구 네트워크(BIEN)의 모태인 기본소득 유럽 네트워크의 설립자이자 기본소득 지구 네트워크의 공동 의장인 필립 반 빠레이스 입니다.

 


 

(2) 필립 반 빠레이스

 

Q. 지금까지 기본소득 운동을 지속해오신 이유가 무엇인가요?

A. 아시다시피, 사회가 조직되는 방식이 부당하고 비효율적인 것을 매일 발견할 수 있습니다. 사회에 있어 중요한 것 중 하나는 소득의 분배가 조직되는 방식입니다. 지금도 시스템이 존재하긴 하지만 기능을 잘 하지 못합니다. 누군가는 너무 많이 일해야 하고, 다른 누군가는 일거리가 없습니다. 물론 다른 대안들과 함께 가야하겠지만, 기본소득은 그런 문제들을 다루는데 있어 주요한 방법 중 하나입니다. 그게 30여년 동안 유럽에서, 그리고 전세계적으로 사람들이 기본소득을 생각하고 기본소득 운동을 해 온 이유입니다.

 

Q. 전세계 청년들이 겪는 문제들은 비슷합니다. 실업이나 낮은 임금 등이요. 가장 먼저 해결되어야 하는 게 무엇이라고 보시나요?

A. 기본소득은 청년들에게 큰 변화를 가져다줄 겁니다. 우선, 기본소득은 노동자나 비자발적 실업자에게로 제한되는 것이 아니라 학생에게도 주어집니다. 젊은이들을 지원하고, 젊은이 뿐 아니라 공부하는 나이 많은 사람을 돕는 방법이기도 합니다. 그게 한 가지 중요한 점입니다.

두번째로, 기본소득은 보다 많은 청년들이 인턴십에 접근할 수 있게 해준다는 점에서 중요합니다. 인턴십은 대체로 보수가 적거나 심지어는 없는 경우도 있습니다. 하지만 인턴십을 하면 일을 배울 수도 있고, 자신의 능력을 계발할 수 있습니다. 많은 나라에서 이런 인턴십이 시행되는데 보수가 적거나 없기 때문에 그 악조건을 감수할 수 있는 사람만이 인턴십을 할 수 있죠. 기본소득이 시행되면 인턴십에 대한 접근권이 평등해지고 되고 일반화될 것입니다. 청년들뿐 아니라 일반적으로 앞서 말한 상황들에 대해 기본소득은 불안정성을 줄여 줄 겁니다.

왜냐하면 기본소득은 소득의 최저선이 되어줄 테고, 이를 바탕으로 사람들이 그들의 삶을 꾸릴 수 있는 안정성을 확보해 주는 겁니다. 그렇게 되면 청년들은 여유로운 삶을 위해 더 많은 선택지를 갖게 되겠죠. 일을 할 지, 공부를 할 지, 자발적인 활동을 할 것인지 선택할 수 있을 테고, 집에서 아이를 돌볼 수도 있을 것입니다.

기본소득이 주는 이러한 안정성은 청년들의 삶의 질을 향상시켜줄 겁니다. 청년 뿐 아니라 인생의 어느 시기에 있든지 말이죠.

 

Q. 한국의 청년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A. 한 가지를 말하고 싶습니다. 당신의 현재 상황을 이해하려고 노력하세요. 현재를 비관하라는 게 아닙니다. 현재 상황에 대한 대안을 생각하세요. 어떤 의미에서는 몽상가가 되세요. 도시계획, 사회정책 등 모든 면에서 현재와는 다른 사회를 만드는 것을 상상해보세요. 모든 것을 시도해보세요. 그것은 당신 자신과, 당신의 자녀들, 후손들을 위한 미래를 만드는 길입니다. 더 많은 소비, 더 큰 구매력, 성장, 이런 것들에 기반을 두지는 않지만 여러분 자신과, 당신의 자녀들, 당신의 후손들에게 지금 우리 세대보다 더 나은 삶을 가져다 줄 미래를 말이죠.

이건 가능합니다. 함께 기본소득에 대해서 계속 고민하고, 기본소득을 위해 투쟁한다면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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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의 기본소득 활동가 인터뷰] 카오리 카타다

 

기본소득 청’소’년 네트워크는 2014년 6월, 몬트리올에서 열린 기본소득 지구 네트워크(BIEN)의 총회에 참가해 해외 기본소득 활동가와 연구자들을 만나고, 인터뷰 했습니다.

기본소득 뉴스를 통해 해외 기본소득 활동가와 연구자들의 인터뷰 영상과 스크립트를 공개합니다.

첫번째 인터뷰이는 일본 호세이대학 조교수이자 반빈곤, 여성인권, 기본소득을 주제로  활발히 활동하고 있는 활동가 겸 연구자인  카오리 카타다 입니다.

 


 

(1) 카오리 카타다

 

Q. 자기소개 부탁드려요.

A. 처음 뵙겠습니다. 카타다 카오리라고 합니다. 도쿄에 있는 호세이대학에서 교원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또 활동가이기도 해서 반빈곤 운동 또는 여성운동에 관여하고 있습니다.

 

Q. 오늘날 청년들이 겪는 삶의 어려움은 무엇이라 생각하시나요?

A. 일본의 청년들도 여러 문제에 직면하고 있습니다. 가장 큰 것 중 하나를 꼽자면 고액의 교육비입니다.

이것은 한국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대학을 졸업하기 위해서는 일반적으로 최저 400만엔이 든다고들 합니다.

학생들 중 절반 이상이 대학을 다니기 위해 ‘장학금’이라는 이름의 학생융자를 받고 있습니다.

저도 대학과 대학원을 다니기 위해 700만엔의 빚을 졌습니다.

 

Q. 기본소득이 청년들에게 어떤 도움이 될까요?

A. 교육 문제와 관련되어 있는데, 기본소득이 있으면 빚을 지지 않고도 대학 교육을 받을 수 있다는 점이 매력 아닐까 합니다.

68년에 학생임금을 요구했던 것처럼, 우리들도 기본소득을 요구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Q. 기본소득 도입을 위해 청년들이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

A. 기본소득에 대하여 이야기를 하는 것도 좋고, 물론 데모도 할 수 있고요. 우리들은 메이데이와는 별개로 프레카리아트 메이데이라는 것을 열고 있습니다.

몇 년 전의 프레카리아트 메이데이에서는 기본소득 또한 중요한 의제였습니다. 또, 여러분이 지금 하고 있는 것처럼 영상으로 알리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도 예전에 친구들과 함께 기본소득에 대한 짧은 영상을 만든 적이 있습니다.

단순한 내용인데, 동일한 질문을 많은 친구들에게 하는 방식으로 찍었습니다. 질문은 “만약 기본소득이 있다면 당신은 무엇을 하시겠습니까?” 였습니다.

이 질문을 많은 청년들에게 하여 제각각의 답을 영상으로 연결하여 만들었습니다. 반응이 상당히 좋았습니다.

 

Q. 한국의 청년들에게 하고 싶은 말

A. 작은 차이점들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많은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를 기반으로 우리가 기본소득의 실현을 위해 함께 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고 싶습니다. 연대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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