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본소득아시아네트워크 칼럼] (2) 나는 왜 기본소득을 지지하는가? (박이은실)

최근 세계 곳곳에서 기본소득이 중요한 주제로 떠올랐습니다. 스위스에서는 기본소득 도입을 위한 국민투표가 있었고, 네덜란드와 핀란드에서는 기본소득 실험을 기획하고 있으며, 한국의 성남시에서는 청년배당이 실시되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다양한 이유로 기본소득을 지지합니다. 일본의 기본소득 연구자인 야마모리 도루는 ‘기본소득을 실현하는 과정이 여성의 잊혀진 권리를 찾는 과정과 닿아있다’고 말합니다. 기본소득은 모두가 동등한 권리를 지닌 시민임을 전제로 하지만, 현대사회에서 아직도 여성은 온전한 시민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것이 사실입니다. 때문에 사회에 드리워진 차별의 그림자를 지워나가는 과정은, 기본소득을 실현해나가는 과정과 멀지 않습니다.

다른 사회 운동들과 마찬가지로 기본소득 운동 역시 유럽 중심, 남성 중심, 연구자 중심이라는 지적에서 자유롭지 못합니다.
남성 연구자/운동가들의 의견은 접하기 쉬운데 반해 여성 활동가의 목소리는 듣기 어려울 때가 많습니다. 현장이나 실무의 중심에는 유능한 여성 활동가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말입니다.

기본소득청’소’년네트워크는 이번 칼럼 연재를 통해 동아시아의 기본소득 지지자와 활동가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려고 합니다. 특히 여성 활동가들의 이야기를요.

서구와는 다른 맥락을 가진, 복잡한 아시아의 상황 속에서 연구하고 활동하는 여성 연구자, 활동가들의 이야기를 통해 공통의 새로운 지도를 그려보면 어떨까요. 그리고 그 지도를 통해 미래를 함께 도모할 수 있기를 희망해봅니다.

 


 

[기본소득아시아네트워크 칼럼]

<나는 왜 기본소득을 지지하는가?>

– 박이은실, 여성문화이론연구소

 

나는 여성학자다. 제도권 안팎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며 연구자로 살고 있다. 1995년에 대학을 졸업한 후 직장생활과 사회단체 생활을 몇 년 하다가 2003년에 대학원에 진학해, 2005년에 석사학위를, 2010년에 박사학위를 받았다. 2011년-2013년까지 3년동안 기본소득한국네트워크에서 기본소득 연구자이자 운영위원으로서 활발한 활동을 했고 전임연구원으로서의 계약기간이 끝난 지금은 기본소득한국네트워크 회원이자 기본소득지구네트워크 평생회원으로 있다. 여러 가지 사정으로 예전만큼 활발히 기본소득 운동에 참여하지는 못하고 있지만 기회있을 때마다 사람들에게 기본소득에 대해 이야기한다.

늘 성실하게 일하지만 가난했던 부모님에게서 태어난 나는 학부 때도, 대학원 때도 공부를 하는 내내 가난한 학생이었다. 대학원 공부는 사회운동을 하다가 필요한 부분이 있는데 다른 연구자들이 많은 관심을 가진 분야가 아니라서 직접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시작했다. 공부를 하다보면 이 길이 내 길인가 싶어지는 때도 없지는 않지만 대체로 나는 연구자로 사는 지금의 삶에 만족한다. 공부하고 글을 쓰고 강의를 하면서 문제적인 사안들에 대해 알리고 그것을 해결하는 움직임에 동참하는 활동은 그 자체가 의미있을 뿐만 아니라 훌륭한 노동양식이자 삶의 방식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세상은 자신이 하는 일이 사회적으로 얼마나 의미가 있고 스스로 얼마나 만족감을 느끼는지와는 상관없이 굴러간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얼만큼의 돈이 있는가이고 그 돈이 또 얼만큼의 돈을 만들어 내는가다. 특히나 요즘은 학계나 교육계가 굴러가는 원리도 크게 다르지 않다. 대학이 지성의 본당이니 지혜의 요람이라는 말은 유물이 된지 오래다.

지금 돈이 없거나 돈이 돈을 만드는 일에 종사하지 않는 이들은 자신이 무슨 일을 하는지와 상관없이 사회의 천덕꾸러기 대접을 받는다. 또한 그들은 지금 이미 가난하지만 앞으로는 더 가난해 질 가능성이 높다.

나와 같이 교육을 많이 받은 여성도 하물며 이러니 그렇지 않은 여성들의 삶은 말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여성들은 이미 오래전부터 저임금에 장시간노동을 요구하는 직종으로 떠밀려왔고 앞으로는 그런 일자리 마저도 로봇이 대체하게 될 것이라고 하니 이 여성들이 더 이상 어디로 밀려날 수 있을지 가늠하기조차 쉽지 않다. 다만 상황이 더 나빠질 것이라는 점은 대체로 이견이 없는 예측인 것같다. 페미니스트로서 내가 특히 주목해 온 여성들인 미혼모, 성노동자, 비이성애자 여성 등은 이미 그동안 여러 가지로 주변화되어 왔던 사람들이다. 앞으로 이들의 삶은 더 힘들어 질 것이다.

1월 29일은 촉망받던 한 여성 시나리오 작가였던 최고은 작가의 기일이다. 그는 삼십대라는 젊은 나이에 병마와 가난에 시달리다가 홀로 짧은 생을 마감했다. OECD 회원국이라는 한국에서 고작 몇 년 전에 일어난 일이다. 이후 유사한 죽음들이 연이어 일어나고 있다. 상황이 바뀌지 않는다면 앞으로 계속 더 많은 사람들이 병마와 가난에 시달리다가 죽어가거나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일도 늘어날 것이다. 한국은 이미 초고령 사회에 접어들었고 수명까지 늘어나 한국의 여성들이 빈곤 노인으로 살아가야 할 시간 또한 그만큼 늘어나고 있다.

기본소득은 이런 상황에서 모두에게 내려질 생명줄과 같은 것이다. 부여잡고 의지해 삶을 이어가고 관계를 이어가고 꿈을 이어가고 시도를 이어가고 사회를 유지해갈 수 있는 생명줄말이다. 그러니 어떻게 기본소득 도입을 지지하지 않을 수 있을까? 지속가능한 삶을 위해, 최소한 인간답게 살기 위해 우리 모두에게는 당장 기본소득 이상의 다른 답은 없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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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소득아시아네트워크 칼럼] (1) 일본의 기본소득과 페미니즘 (카오리 카타다)

최근 세계 곳곳에서 기본소득이 중요한 주제로 떠올랐습니다. 스위스에서는 기본소득 도입을 위한 국민투표가 있었고, 네덜란드와 핀란드에서는 기본소득 실험을 기획하고 있으며, 한국의 성남시에서는 청년배당이 실시되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다양한 이유로 기본소득을 지지합니다. 일본의 기본소득 연구자인 야마모리 도루는 ‘기본소득을 실현하는 과정이 여성의 잊혀진 권리를 찾는 과정과 닿아있다’고 말합니다. 기본소득은 모두가 동등한 권리를 지닌 시민임을 전제로 하지만, 현대사회에서 아직도 여성은 온전한 시민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것이 사실입니다. 때문에 사회에 드리워진 차별의 그림자를 지워나가는 과정은, 기본소득을 실현해나가는 과정과 멀지 않습니다.

다른 사회 운동들과 마찬가지로 기본소득 운동 역시 유럽 중심, 남성 중심, 연구자 중심이라는 지적에서 자유롭지 못합니다.

남성 연구자/운동가들의 의견은 접하기 쉬운데 반해 여성 활동가의 목소리는 듣기 어려울 때가 많습니다. 현장이나 실무의 중심에는 유능한 여성 활동가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말입니다.

기본소득청’소’년네트워크는 이번 칼럼 연재를 통해 동아시아의 기본소득 지지자와 활동가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려고 합니다. 특히 여성 활동가들의 이야기를요.

서구와는 다른 맥락을 가진, 복잡한 아시아의 상황 속에서 연구하고 활동하는 여성 연구자, 활동가들의 이야기를 통해 공통의 새로운 지도를 그려보면 어떨까요. 그리고 그 지도를 통해 미래를 함께 도모할 수 있기를 희망해봅니다.

 

 


 

[기본소득아시아네트워크 칼럼]

<일본의 기본소득과 페미니즘>

– 카오리 카타다, 일본 호세이 대학교 (katadakaori@gmail.com)

 

기본소득(Basic Income, BI)은 모든 개인에게 조건 없이 소득을 보장하는 정책입니다. 기본소득은 노동, 가정, 젠더, 소득 또는 재산으로 사람을 구별하지 않습니다. 그저 살아있다는 이유로 사람들은 기본소득을 요구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요구는 삶에서 핵심적인 것이지요. 우리의 삶이란 우리가 웃고, 춤추고, 노래하고, 화내고, 싸우고, 울고, 글 쓰고, 꿈꾸고, 보살피고, 사랑하면서 충만하게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런 삶은 창조성과 생산성을 북돋아줍니다.

저는 두 가지 이유에서 기본소득을 요구하기 시작했습니다. 첫 번째 이유는 간단합니다. 빈곤선(poverty-line)(각주1)의 경계에 걸친 채 살아가는 대학원생으로서, 저는 물질적인 필요를 위해서 기본소득을 원했습니다. 제가 기본소득 개념을 처음 접했을 당시에, 저는 대학원에 다니기 위해서 ‘장학금(일본의 상황에서 이것은 아주 부적절한 명칭인데, 이 단어가 의미하는 바는 사실 학생 대출이기 때문이지요.)’을 받고, 거의 매일 ‘시간제(part-time)’ 일을 하고 있었습니다. 책도 거의 살 수 없었기 때문에 마음이 괴로웠습니다. 날마다 제가 살아가는 부조리한 현실 속에서 분노했습니다.

바로 그 무렵이 제가 처음으로 기본소득 개념을 마주한 때였고, 저는 기본소득이 제가 사랑하는 것을 공부하면서도 동시에 충만한 삶을 살 수 있게 해준다는걸 알았습니다.

제가 기본소득을 요구하게 된 두 번째 이유는 제 연구 주제 때문입니다. 저의 연구 주제는 빈곤과 빈곤 퇴치 전략, 그리고 사회 부조(social assistance)입니다. 자본주의의 태동에서부터 빈곤층에 대한 사회 부조는 지속적으로 이어져왔지만, [그 대상은] 항상 임금 노동자 중 빈곤층이었습니다. 또한 이때 빈곤층은 ‘가난할 만해서 가난한 사람들’ 또는 ‘지나치게 많은 도움을 받아서는 안 되는 가난한 사람들(the underserving poor)’로 범주화되고 등급 매겨졌습니다. 이때 평가의 잣대는 일할 수 있는 능력 대(versus) 그러한 능력의 부재, 일하고자 하는 의지 대(versus) 그러한 의지의 부재가 되었습니다. 현재의 사회 부조 시스템은 임금 노동이 핵심인 사회 구조를 반영하고 있습니다. 게다가 그러한 시스템은 남성에게 유리하고 여성에게 불리한 현재의 젠더 위계를 지속시켰습니다. 노동과 젠더에 기반을 두고 이루어지는 범주화와 등급 매기기는 낙인과 사회적 분화(Social Division)를 낳았습니다. 현존하는 사회 부조 제도에 대해 회의적인 입장을 가진 저로서는 기본소득 개념을 희망적인 신호로 받아들이게 되었는데, 기본소득 개념을 통해서 임금 노동의 지배적 상황을 뒤집고 현재의 젠더 위계질서를 개혁할 수 있다고 보았기 때문입니다. 이런 점에서 기본소득은 분리를 거부하고 진정한 평등을 요구하는 개념입니다.

따라서 저는 연구자이자 활동가로서 기본소득을 요구합니다. 2005년 무렵부터 기본소득이라는 발상이 주목받기 시작했고, 저는 일본 근방에서 이루어진 여러 대회 및 학술 토론회에 발표자로 초청받기 시작했습니다. 이때 발표를 요청했던 대다수가 여성 집단, 장애인, ‘프레카리아트(precariat)’였다는 사실은 매우 흥미롭습니다. 참고로 ‘프레카리아트’란 임금 노동으로부터 주변화되거나 배제 당한 사람들을 일컫는 용어입니다. 2008년에 도쿄에서 개최된 프레카리아트 대회와 노동절 시위에서는 처음으로 기본소득을 주제 안건으로 삼기도 했습니다. 기본소득은 임금 노동이 핵심이 되는 구조를 제거하는 아이디어이기에, 임금 노동에서 배제되거나 혹은 주변화된 사람들 사이에서 반향을 일으켰습니다.

기본소득 개념이 사회적으로 퍼지자, 기본소득과 관련하여 최소 세 가지 영역에서 분리가 심화되었습니다. 첫 번째로 학계에 있는 남성과 여성의 분리입니다. 일례로 2009년에 연구자들이 ‘일본 기본소득 네트워크(BIJN)’를 설립했을 때, 총 열 명의 창시자 중 여성은 단 한 명 뿐이었습니다. (어쩌다보니 그 한 명이 바로 제가 되었네요.) 기본소득 관련 학계는 젠더를 인식하지 못하고 있음이 확실했습니다. 두 번째는 연구자와 활동가의 분리입니다. 기본소득에 대한 사회적 요구를 제고하려면 연구자와 활동가들의 협업이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불행하게도 지금까지는 그런 사례가 없었습니다. 일본 기본소득 네트워크가 노력을 확장해나갈수록 연구자들과 활동가들의 관심사는 점점 반목하게 되었고, 그로 인해 연대는 약해졌으며 겨우 몇 가지의 연대 사례만이 남았을 뿐입니다. 세 번째는 페미니스트 운동 내부의 분리입니다. 제게 인상적으로 기억되는 한 사건이 있습니다. 2010년, 저는 여성과 빈곤 네트워크(Woman and Poverty Network) 대회에 초대되어 기본소득에 대해 발표한 적이 있습니다. 저의 발표가 끝나자마자, 한 여성이 일어나 이렇게 이야기했습니다. “우리는 비현실적인 이야기나 들으려고 여기 온 것이 아니다. 지금 당장 논의해야 하는 사안은 현존하는 사회 보장 제도 체계를 어떻게 보전할 수 있는가 하는 문제다.” 이렇게 말한 여성과 같은 생각을 하는 여성들에게 기본소득이란 진지하게 고려해서도 안되는, 본질적으로 터무니없는 유토피아적 개념인 것이지요.

구분을 지양하고 평등을 고취하는 개념인 기본소득을 둘러싸고 이와 같은 분리들이 나타나는 것을 보면서 저는 매우 안타깝고 불안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저는 연구자로서의 입장과 활동가로서의 입장 사이에서 흔들리기 시작했습니다. 당시 저는 이처럼 결실 없는 분리에 대한 극복 방안을 모색하기 위하여 멋진 사람들과 함께 두 가지 프로젝트를 시작했는데, 제 연구에 이때의 상황이 나타나 있습니다. 한 프로젝트는 동료 페미니스트들과 함께 기본소득에 대한 독특한 책(각주2)을 만드는 것이었습니다. 우리는 책을 만들 때 다음의 조건들을 충족하도록 기획했습니다. 1) 학계에서 잊혔거나 무시된 풀뿌리 현장의 목소리를 조명하는 것, 2) 남성의 목소리에 묻힌 여성들의 목소리를 조명하는 것, 3) 다양한 입장의 여성들로부터 그들의 목소리를 수집하는 것입니다. 이 책은 결과적으로 특별한 작업이 되었는데, 싱글맘(single mother), 레즈비언, 가정 폭력 생존자, 학생, 예술가, 사회적 노동자, 남녀 동일 임금 활동가(equal pay activist) 등 다양한 입장에 있는 사람들과 함께 기본소득 논의를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이 책은 일본에서는 처음으로 젠더 관점에서 쓰인 기본소득 서적이었고, 다양한 여성 집단을 드러내는 증거 모음집이기도 했습니다.

다음으로 제가 참여했던 프로젝트는 ‘유루-페미(Yuru-Femi) 카페’(편안한 분위기의 페미니즘 카페라는 뜻)  프로젝트로, 연구자뿐만 아니라 예술가들, 학생들, 활동가들, 편집자들에 의해 구성됐습니다. 그들은 주로 20대에서 30대로, 상대적으로 젊은 사람들이었습니다. 이 그룹의 목표는 상냥하고 친밀한 태도와 ‘친구와 차 한 잔 하는 것 같은’ 일상성 속에서 (당시로서는 공격적일 수 있는) 페미니즘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었습니다. 또한 자립 그룹이 으레 그러하듯이, 이 그룹 역시도 당시 이 그룹과 관련된 개별 여성들에게 역량 강화(empowerment)의 공간으로서 기능하고 있었습니다. 이 그룹의 주된 초점은 기본소득이 아니었지만, 각 구성원들은 각자의 의제에  적극적이었으며 대부분이 기본적으로 기본소득 개념에 동의했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기본소득이 삶에 창조성과 생산성의 씨앗을 뿌리는 가장 기본적인 필요조건 중 하나임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지금으로서는 기본소득이 비현실적이고 이상적인 개념으로 들릴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우리가 터무니없는 꿈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그 누가 말할 수 있을까요? 우리가 이상적인 개념들에 대해 이야기할 수는 없다고 그 누가 말할 수 있겠습니까? 대안의(alternative) 세상에서 기본소득은 실재로서 존재한다는 것을 기억해주세요. 그리고 이것 또한 잊지마세요. 우리의 현실이 된 국가 건강 보험 또는 연금 제도가 100년 전에는 이상적인 이야기로 들렸다는 것을 말입니다. 저는 우리가 계속 우리의 꿈을 좇을 수 있도록, 모두 함께 기본소득을 현실로 만들어나가기를 제안합니다.

 

각주1) ‘빈곤선’ 또는 ‘궁핍선’이란 경제학에서 빈곤의 넓이와 깊이를 측정하는 척도로 사용되는 일정한 생활 기준을 뜻하는 용어입니다. (옮긴이)

각주 2) Katada, K. and others. 2011. Basic Income and Gender. Gendai Shokan, Tokyo. (글쓴이)

 

번역: 루리 클락슨(일영), 강민형(영한)

편집: 스밀라

북미 기본소득 여성행동그룹 성명서

기본소득 여성행동그룹 성명서 / 칼 와이더키스트 / 2015. 5. 14

지난 4월 북미에서 기본소득 여성행동그룹이 만들어졌습니다. 기본소득 여성 활동가를 포함한 여러 시민 활동가들 간의 적극적인 연대를 촉구하는 동시에 기본소득 운동의 역사적 맥락을 잇기 위해 발족된 단체입니다.

성명서 전문을 게재합니다. 원문은 다음 링크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http://www.basicincome.org/news/2015/05/a-basic-income-women-action-group-statem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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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시민 수당을 주장한 여성 해방 활동가들을 여기 이 자리에 다시 부르다

오피니언: 시민 수당을 주장한 여성 해방 활동가들을 여기 이 자리에 다시 부르다 / 도루 야마모리 / 2015. 4. 17

기사 원문은 다음 링크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http://www.basicincome.org/news/2015/04/opinion-reclaiming-the-womens-liberationist-demand-for-a-citizens-income/


잉글랜드와 웨일즈의 녹색당, 스코틀랜드 녹색당의 노력으로 영국은 다가오는 2015년 5월 7일에 ‘시민 수당’ 즉 ‘기본소득’을 정치 의제로써 총선거에 부칠 예정이다. 이 논제는 그간 영국 내 매체 보도를 통해 빠르게 번져나가고 있었다. Continue reading

[해외의 기본소득 활동가 인터뷰] 도루 야마모리

 

 

[해외의 기본소득 활동가 인터뷰] 도루 야마모리

기본소득 청’소’년 네트워크는 2014년 6월, 몬트리올에서 열린 기본소득 지구 네트워크(BIEN)의 총회에 참가해 해외 기본소득 활동가와 연구자들을 만나고, 인터뷰 했습니다.

기본소득 뉴스를 통해 해외 기본소득 활동가와 연구자들의 인터뷰 영상과 스크립트를 공개합니다.

 

네번째 인터뷰이는 일본 도시샤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는 연구자 겸 활동가인 도루 야마모리입니다. 도루 야마모리는 주로 여성주의 경제학과 기본소득 등에 대해 연구하고 있는데, 그의 논문 중 싱글맘들의 기본소득 투쟁을 다룬 <잊혀진 여성들: 기본소득을 위한 싱글맘의 잊혀진 투쟁>은 한국어로도 번역되어 있습니다. 또한 최근엔 <일본의 기본소득>이라는 책을 공동 집필하기도 했습니다.

 

***

(4) 도루 야마모리

 

Q. 간단히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A. 제 이름은 도루 야마모리입니다. 일본에서 태어나 인생의 대부분을 일본에서 보냈으며, 현재는 영국에 살고 있습니다.

 
 

Q. 오늘날 일본의 젊은이들이 힘들어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 이유가 한국의 젊은이들이 힘들어하는 이유와 관련 있을 것 같은데요.

A. 네,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한국에서도 경우에 따라 다를 것 같기는 하지만, 사립대학에 재직하고 있는 교수로서 보면 저의 학생들은 상대적으로 특권층 출신이 많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젊은 사람들은 좋은 회사에 취직하는 것에 대해 엄청난 부담감을 느끼고 있습니다. 좋은 회사에 취직하기 위해서 그들은 대학교에 다니는 학생 신분일 때 계약을 해야 합니다. 만약 모범적인 트랙에서 벗어나게 되면 그들은 좋은 회사에 취직할 수 없습니다. 성공한 트랙과 실패한 트랙이라는 커다란 선택의 갈림길에 있는 것이죠.

아시아의 젊은 학생들 대부분은 부유층이건 아니건 간에 이런 거대한 압박 때문에 고통 받고 있습니다. 특히 가난한 집안 출신의 젊은 학생들은 비정규직 노동을 하게 되기도 하는데, 요즘 사용하는 말로 ‘프레카리아트’라고 하지요.

저는 한 공사 현장 노동자들의 조합을 지지했었는데, 그들 대부분은 임금을 받는다는 이유로 사회 보장을 받을 수 없었기 때문에 홈리스 상태였습니다. 또한 건축 회사에 속해 있지 않다는 이유로 임금을 거의 받지 못하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그러한 프레카리아트 노동자들의 대부분은 시골 출신에 교육을 잘 받지 못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이 겪었던 상황이 그들의 능력이나 선택의 문제 때문에 일어난 것이 아니라 단지 사회적 차별과 평등의 문제 때문에 일어난 것이었기에 그들은 일어나서 복지를 요구한 것입니다.

이런 문제들은 경제 위기, 규제완화 등을 거치며 계속 악화되고 있습니다. 이러한 상황을 저는 매우 안타깝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제가 보여드리고 싶은 책에 있는 내용이기도 한데, 아무래도 세계의 여러 노동조합(trade union)들이 기본 소득을 완벽하게 지지하고 있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홋카이도의 공사장 인부들로 이루어진 한 노동조합이 기본소득을 지지하고 연합의 안건으로 수용한 사례가 있습니다.

지진으로 인한 후쿠시마 원전사고가 일어나기 조금 전의 일인데, 경제 불황을 겪는 과정에서 이 조합에서는 기본소득을 안건으로 발의했으며, 지진이 일어난 후 그들은 커뮤니티 안에서 공개적으로 기본소득 이슈를 논의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런 예시가 일본에서 기본소득을 지지하는 운동 중 하나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Q. 기본소득이 어떻게 젊은 사람들을 도울 수 있을까요?

A. 저는 유럽의 경우가 다르다는 말에 동의하지는 않지만, 아무래도 확실히 한국과 일본은 문화적인 면에서 꽤 비슷하다고 생각합니다. 저조차도 개미처럼 일해야 한다는 노동 정서가 지배하는 사회에 20년 넘게 살아왔으니까요. 제게 4살짜리 아들이 있는데 한 두 해 전까지만 해도 저는 아들을 매일 유치원에 데려다주고 나서 제 직장에 가야 했습니다. 그런데 아들이 유치원에 가기도 싫어하고, 가는 길 내내 하품하면서 늘 저와 함께 있고 싶어 하고, 움직이지를 않았어요. 그러다보니 저도 버릇처럼 이렇게 말하게 되더군요. “아빠는 일하러 가야 해. 아빠가 일 안하면 아들이 유치원 못 다니잖아. 우리 저녁에 밥 먹으려면 아빠가 일을 해야지.” 그런 개념은 제가 철저하게 반대하고 있는 것인데도 말이죠.

그런 문화 양식의 사회에서 살아가는 것에 익숙해진 사람들, 그런 방식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은 자신의 삶과 미래를 이끌어나가는 방향에 대해 고정된 관념을 갖게 됩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돈을 벌어서 생존을 도모하는 방식 이외에 본인이나 가족, 친구들, 나아가 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다른 방식과 비전을 가져야 합니다. 삶이란 그런 것이어야 합니다. 인생이 꼭 생존만을 위한 것은 아니니까요. 서로를 돕고, 즐겁게 해주는, 더 행복하고 풍성한 삶의 방식을 생각해야 합니다. 이런 식으로 살아가는 방향을 생각한다면, 우리에게는 기본소득이 필요합니다.

젊은이들이 기본소득을 통해 모든 고뇌로부터 벗어날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경제적인 생존을 위한 고뇌에서는 조금 벗어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은 좀 더 세계에 기여할 수 있는 방향으로 성장할 수 있을 것입니다.

 
 

Q. 기본소득과 페미니즘을 공부하고 또 그 분야에 집중하게 되신 이유는 무엇입니까?

A. 여기에서 말하기에는 조금 긴 이야기가 될 수 있겠네요. 페미니즘에 입문하게 된 계기는 그다지 좋은 일로 인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공사 현장 노동자들의 노동조합을 위한 운동을 하게 되었는데, 그 팀을 꾸려나가면서 대학생과 함께 운동을 진행하게 되었습니다. 짐작하실 수 있겠지만, 공사장 노동자들은 주로 남성들이었고, 여성은 거의 없었습니다. 그들의 성적 지향에 대해서는 잘 모르지만, 호모섹슈얼이나 인터섹슈얼의 문화 역시 부재했습니다. 그들은 아주 남성 중심적인 집단이었고, 여성과 소통하는 것에 익숙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이 남성 중심적인 사람들이 저의 동료 여성 학생들과 원활하게 소통할 수 있을지에 대해 고민했습니다. 문화 코드가 달라서 충돌할 수 있으니까요.

그러던 중 여학생들이 불쾌한 상황을 경험하는 것을 곁에서 목격하게 되었습니다. 성추행이라고 볼 수 있죠. 하지만 공사장 노동자들과 함께 프레카리아트 운동을 하는 상황에서 그들이 성적으로 불쾌감을 일으키는 행동을 했을 때 이에 곧바로 대처하는 것은 생각보다 쉽지 않습니다. 어떻게 말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공사장 노동자들이 허락을 받지 않은 상태에서 여성 동료들의 몸을 만지거나 하는 그런 상황에서 말입니다. “성추행을 저지른 저 남성 노동자를 이 운동에서 제외시켜야 하나?” 이런 고민을 하게 되지요. 그것이 제가 페미니즘에 입문하게 된 계기였습니다. 그런 상황 속에서 성차별적인 사고방식을 지닌 사람들을 비판하고, 문제를 풀어나가기 위해서 말이죠. 그것이 제가 처음 페미니즘에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였습니다.

아무튼 저는 계속 이 분야에 관심을 가졌고, 한편으로는 계속 제 스스로의 힘으로 돈을 벌어야 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청소 노동자로 일하기도 했습니다. 청소 노동자들도 보통 비정규직 노동자들이었지요. 청소 노동자로 일하면서 교토 대학의 교직원실, 강의실에서 많은 관계자들과 학생들을 만났습니다. 그들을 보면 경제가 아주 잘 돌아가고 있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들은 정말 평범한 일본의 시민처럼 보였거든요. 정말 다른 세계에서 살고 있는 것이지요.

그런데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그들이 정말 평범한 일본의 시민들이라면, 내가 지난날 만났던 사람들은 도대체 어떤 사람들이지?” 저는 그래서 경제학을 해체하고 다시 세우려고 노력합니다. 경제학에서 상정하는 인간은 합리적이고 경제적인 인간이지요. 그런 합리적이고 경제적인 인간은 우리가 일상 속에서 만나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경제학에서 이야기하는 합리적인 인간은 하루에 24시간을 일할 수 있고, 다른 조건에 신경 쓰지 않고 오직 일만 하는 인간이지요. 그것이 경제학에서 바라보는 인간의 모형입니다. 일을 하기 위해서 다른 어떤 것을 준비할 필요도 없고, 가족이나 다른 사람들을 신경 쓸 필요도 없는 인간 모형 말입니다. 그래서 저는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그래, 그런 인간 모형의 전제를 바꾸자.” 경제학적 인간 모델을 새롭게 정립하기 위해 보다 인간적인 철학이 필요하다고 생각했고, 한 걸음 한 걸음씩 나아가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어쨌든 제 주변에는 페미니스트 친구들이 많습니다만 저는 저 스스로를 페미니스트라고 꼭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정확히는 성차별반대주의자(anti-sexist)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저는 가부장적인 사회에서 자랐습니다. 저희 아버지께서는 저를 비판하실 때 늘 저를 법도도 모르는 놈이라고 부르시더군요. 어쩌면 제가 저의 섬세한 면모보다는 ‘남성성’을 내면화했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제 가족들은 저의 섬세함을 나약한 것이라고 보고 그것을 좋아하지 않았어요. 그래서 저는 가족들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저 스스로를 ‘남성화’하려고 노력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남성성’과 관련하여 제가 겪은 사회와의 충돌 및 갈등이 페미니즘에 대한 저의 관심과 연결되어 있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쓴 페미니즘에 대한 논문을 보면, 대부분이 기본소득과 관련되고 그 개념에 집중되어 있습니다. 저는 일본에서 1999년에 처음 기본소득에 대한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때 사람들은 제가 광적이라고, 미쳤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기본소득 개념이 너무 이상적이라고 생각했고, 제 이야기를 믿지 않고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았죠. 저는 골방에 틀어박혀 책만 읽게 되었고, 사람들과 기본소득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지 못했습니다.

저에게 온 큰 변화는 2002년에 일어났습니다. 제게 해외로 나갈 기회와 돈이 생겼고, 저는 영국으로 가서 당시 기본소득 유럽 네트워크의 창시자이자 영국의 기본소득 네트워크를 만든 사람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 분은 제가 했던 운동과 비슷한 운동을 이미 1970년대에 영국에서 하고 있었습니다. 그 운동은 ‘청구인연합운동’이라고 불리는데, 이 운동을 하는 사람들이 기본소득을 요구했습니다. 그 교수님이 제게 운동에 참여하는 사람들을 소개해 주었는데, 절반 이상의 참여자들이 여성, 특히 싱글맘이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1970년대의 여러 사회 운동에서 여성들이 주축이 되어 활동했고, 기본소득을 요구했다는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 운동에서 요구된 바는 기본소득과 비슷하지만 조금 더 넓은 범위 개념인 ‘최저 보장 소득(guaranteed income)’이었습니다. 이 운동은 사람들에게 거의 잊히다시피 했지만 매우 중요한 것이었고, 재조명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기본소득에 대한 교육적인 책을 출판하게 되었고, 그 책의 절반 이상에서 여성들의 투쟁에 대해 다뤘습니다.

책이 출판되고 나서 사회 운동가들, 그 중에서도 싱글맘 사회 운동가들이 제게 연락을 해왔죠. 그런 식으로 활동들이 이어지게 되었습니다. 일본에서 기본소득을 지지하는 사람으로서 제가 누군가에게 10초 동안 기본소득에 대해 설명해야 한다면, 제 대답은 이렇습니다.

지금까지 그래왔고 지금도 그렇지만 기본소득이란 “가족 중 누가 돈을 벌 것인가?” 라는 질문에 대한 견해입니다. 사실 그 질문은 가족 구성원들 모두의 말문을 닫아버릴 수 있는 마법의 질문이지요. 만일 우리에게 기본소득이 생긴다면, 그 마법의 질문에 대해 아무도 답할 필요가 없을 것입니다. 기본소득을 갖게 된다면 사람들은 보다 자유로워질 것입니다. 기본소득을 갖게 된다면 사람들은 성차별주의뿐 아니라 핵가족의 문제점으로부터도 벗어나게 될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기본소득과 페미니즘 사이의 독특한 연결 고리입니다.

물론 기본소득을 통해서 이러한 문제점을 완전히 없앨 수는 없겠지만, 경제적인 면에서 볼 때, 남성 지배적인 가족관으로부터 여성을 보다 자유롭게 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Q. 마지막으로 한국 청년들에게 한마디 부탁드립니다.

A. 돌아보면 이런 생각이 듭니다. 우리의 삶은 유일한 기회입니다. 게임에서처럼 다음 기회가 있는 게 아닙니다. 세상에는 절망적인 상황이 많이 있지만, 우리에게는 여전히 희망이 있습니다. 영어로는 어떻게 표현하는지 모르겠습니다만, 우리 스스로 변화의 도화선이 됩시다. 상황을 비관하기보다는 그냥 우리가 원하는 변화를 이루어나갑시다. 무언가를 합시다. 그러면 사회가 당신이 원하는 모습으로 바뀌어나갈 것입니다. 그게 저의 메시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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